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Apr 05. 2022

글쓰기에 필요한 역량 -③작가라는 짐 내려놓기-

'작가라는 짐'은 스스로 짊어진 무게다.

'작가'라는 말이 흔해지긴 했지만, 그것에 대한 환상과 기대는 여전하다.

환상이라 함은 뭔가 고상하게 전업으로 글을 쓰는 것을 떠올리게 하고, 기대는 남들이 우러러 봐주는 시선과 연관되어 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쓰고, 인세를 따박따박 거둬들이는 이미지가 고착되었다고도 볼 수도 있다. 고착된 이미지는 그러하지 않은 것들을 작가라고 규정하지 않는 이데올로기가 된다. 책을 내지 않았거나  유명한 작품이 없고, 생계를 유지하고도 남을 정도의 인세가 없다면 네가 무슨 작가냐라는 비아냥이 난무하기 십상이다.


그 비아냥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보다 크다.

남의 눈치와 비아냥이 머리와 마음에 들어오면 그것은 증폭된다. 내부의 자기 검열관이 그것을 키우고 또 키운다. 하여, 스스로 내 주제에 무슨 글쓰기를 하느냐고 또 내가 꼴에 무슨 작가냐고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글을 쓰기도 전에 또는 글을 써 나아가는 과정에 '작가'라는 말은 짐이 된다.

그토록 갖고 싶다는 열망이 무게로 변환되는 순간이다. 열 에너지로 쓰여야 할 그것이 무게로 변환되어 스스로의 어깨를 짓누른다.


'작가'라는 말은 '지을 작'과 '집 가'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 뜻을 잘 살펴보면 작가라는 무게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다. 그러니까 작가는 전업으로 글을 쓰거나 책을 낸 사람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나만의 집을 짓는 사람이라면 작가란 뜻이다. 그렇다면 '나만의 집'이란 무엇일까? 내 생각과 느낌을 말한다. 내 고유의 것을 발견하고 글이나 다른 무언가로 표현하고 남기는 것을 말한다.


쓰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싶다면 그리면 되고, 조각하고 싶다면 무언가를 깎아내면 된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내 생각과 마음이다.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어떤 걸 느끼고 싶은 것인지를 아는 과정이 먼저다. 유명해지고 책을 내는 게 먼저가 아니란 말이다. 대개 짐의 무게는 이러한 마음에서 먼저 온다. 순서가 뒤바뀌어 있거나, 본질과 수단이 전도될 때 무게는 가중된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유지해 나아가는 과정에 많은 역량이 필요하지만, 나는 '작가라는 짐'을 내려놓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다'라고 항상 강조하는 이유다. 씀으로써 작가가 되어야지, 작가라는 이데올로기를 뒤집어써 그것의 명칭을 획득하고자 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스스로를 지치게만 할 뿐이다.


'작가라는 짐'은 스스로 짊어진 무게다.

그 누구도 내게 그것을 지우지 않았다. 쓰고 싶다는 마음은 내 속으로부터 왔고, 작가가 되고 싶다는 다짐도 다름 아닌 내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무게도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 남의 눈치를 보다가는 내 이야기를 할 수 없고, 내 이야기를 할 수 없으면 내 고유성은 사라지게 된다. 고유성이 사라진 글은 좀비와도 같다. 기록되어 여기저기를 떠돌겠지만 영혼이 없고 그래서 감동이 없다.


멀리 가려면 짐을 가볍게 해야 한다.

또는 그 짐 안에 내게 필요한 의미를 듬뿍 담거나.


무거운 것과 묵직한 것의 차이는 크다.

나는 굳이 짐을 짊어져야 한다면 묵직한 것을 택하고 싶다.


네가 무슨 작가냐라는 비아냥 대신, 씀으로써 이미 나는 작가이고 더 좋은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짐을 내려놓는 홀가분함과, 내게 필요한 묵직한 짐을 선택하는 결연함.

글 쓰는 내내 잊지 말아야 할, 나만의 역량이다.




[브런치 x 와디즈 수상] 인문학 글쓰기 & 출간 펀딩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별거 아닌 글이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