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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08. 2022

글쓰기에 필요한 역량 -⑥통찰력-

멀리가 아니라, 나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통찰력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니면 글을 쓰면 통찰력이 생길까?


글을 쓰며 내가 내린 결론은 둘 다다.

마음에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혹은 훅 하고 올라왔다면, 그 순간은 무언가 다른 걸 본 것이다. 일상에서 보지 못했던, 느끼지 못했던,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 어느 것들을 말이다. 


'통찰'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훤히 꿰뚫어 보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관찰력은 한 번에 오는 경우도 있고, 때론 차곡차곡 무언가가 쌓여 폭발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통근'의 '근'자가 '부지런할 근'이란 걸 알고 화들짝 놀라 글을 써 내려갔던 그때를 떠올려보면 그것은 앞서 말한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다. 아무 준비도 없이, 어떤 글감이 떠올라 숨 쉴 틈 없이 글을 써 내렸던 때는 전자에 해당한다.


이러한 통찰력은 내 주위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때 생겨난다.

당연함은 질문을 멈추게 만든다. 더불어, 그것에 대한 생각과 사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단적인 예로 '공기'를 들 수 있다. 당연하게 생각할 땐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 물속에 들어가거나 좁은 공간에서 숨이 가쁠 땐 여지없이 그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어느 구성원 한 명의 부재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지지고 볶던 가족에 대한 지긋지긋함은 연민으로 급변한다. 영원히 함께,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것들을 새로이 보는 그 자체가 통찰의 시작이다.


이처럼, 통찰은 곧 글이 된다.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본 이상, 그 벅찬 감정을 그대로 둘 수 없기에 사람이라는 존재는 무언가를 기록한다. 그 기록에 감정과 생각을 담으면 글이 된다. 그런데 글이 주는 선물이 있다. 그 또한 바로 '통찰'이다. 통찰한 바를 글로 썼는데, 글을 쓰다 보면 또 다른 통찰이 생긴다.


글쓰기는 '나'라는 우주를 유영할 수 있는 우주선과도 같다.

나조차도 모르는 내 마음이라는 우주는 그 무엇보다 광활하다. 그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 글쓰기라면, 글을 쓴다는 행위는 고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다 알 수 없는 그 세계를 조금이나마 알아간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조금은 숭고해질 수도 있겠다. 그러하므로, 통찰력이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다. 세상을 바라보기 전 나를 먼저 바라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휘둘리지 않고, 더 큰 통찰력을 얻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선순환이라 일컫는다.

그러나 순환이 되려면, 어찌 되었건 '시작점'이 있어야 한다.


그 시작점이 바로 '글쓰기'다.

통찰로 글을 쓰고, 글을 쓰니 통찰이 되고. 글은 그렇게 삶이 되고, 삶은 글이 된다. 나는 글이 되고, 글은 나 자신이 된다.


통찰력은 먼데 있지 않다.

그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지긋이 고개를 끄덕여 주면 된다. 다른 멋진 삶이 아닌, 소박하더라도 진지한 내 삶을 바라보면 된다.


멀리가 아니라, 나 자신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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