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공부 (feat. 내성이라는 역량)

그렇게, '삶'은 오늘도 이어진다.

by 스테르담
우리의 삶은 끝이 있지만,
앎에는 끝이 없다.


삶은.

지경을 넓혀 가는 과정이다.


무언가를 넓혀 간다는 건 즐거움과 고통이 함께 하는 일련의 흐름이다.

그 흐름 속에서 '삶'은 '앎'이 되고, '앎'은 '삶'이 된다.


그중에서도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가장 큰 '삶'이자 '앎'이다.

사실, 우리는 '삶'도 '사람'도 알 수 없다. 1초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나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가 과연 무엇을 알 수 있겠느냔 말이다.


나는 '알아가는 것'을 지식이라 생각하는 걸 극히 경계한다.

지식이 될 때 '앎'은 그 한계를 드러내고, 수많은 편견과 오해를 양산한다. 진정한 '앎'은 지식이 아니라 '받아들임'이다. 그제야 비로소 지식이라는 박제를 깨고, '앎'은 유연하고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무릇, 삶에는 끝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 끝은 시간과 육체에 국한한 말이다. '앎'에 끝이 없다는 말은, 이 나약한 육체를 보전하는 영원의 개념이다. 즉, 내가 무언가를 깨닫고 그것을 지식이 아닌 지경의 넓힘으로 받아들인다면 끝이 없는 무언가를 해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너의 삶을 살지 못한다.

너는 나의 삶을 살지 못한다.


그러니 공부가 필요하다.

나 자신조차도 잘 알지 못한다면, 남을 잘 알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앎'이다. 또한 그것이 '삶'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내성'을 쌓아 간다.

한 번 다친 마음은, 그다음의 상처에서 조금은 더 의연해질 수 있다. 사람으로부터 받는 상처와 황망함은 말할 수 없는 '앎'의 기회다. 그 기회의 연속이 바로 우리의 '삶'임을 누구도 부정할 순 없다.


삶의 끝은 앎의 끝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 순간이다.

우리의 앎은 충족되지 않는 결핍이므로, 어쩌면 우리는 끝이 없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머리로, 지식으로 알려고 하는 사람 공부는 성공할 수 없다.

마음으로, 내성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공부는 성공의 확률이 높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는 사람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

머리와 지식의 스위치를 내리고 마음과 내성의 버튼을 누른다.


이것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함이다.

누군가 던진 쓰레기를 들고 어리둥절할 시간은 없으니까.


쓰레기는 쓰레기 통에.

이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앎'이 아닌가.


그렇게, '삶'은 오늘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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