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는 '삶'도 '사람'도 알 수 없다. 1초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나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가 과연 무엇을 알 수 있겠느냔 말이다.
나는 '알아가는 것'을 지식이라 생각하는 걸 극히 경계한다.
지식이 될 때 '앎'은 그 한계를 드러내고, 수많은 편견과 오해를 양산한다. 진정한 '앎'은 지식이 아니라 '받아들임'이다. 그제야 비로소 지식이라는 박제를 깨고, '앎'은 유연하고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무릇, 삶에는 끝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 끝은 시간과 육체에 국한한 말이다. '앎'에 끝이 없다는 말은, 이 나약한 육체를 보전하는 영원의 개념이다. 즉, 내가 무언가를 깨닫고 그것을 지식이 아닌 지경의 넓힘으로 받아들인다면 끝이 없는 무언가를 해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너의 삶을 살지 못한다.
너는 나의 삶을 살지 못한다.
그러니 공부가 필요하다.
나 자신조차도 잘 알지 못한다면, 남을 잘 알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앎'이다. 또한 그것이 '삶'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내성'을 쌓아 간다.
한 번 다친 마음은, 그다음의 상처에서 조금은 더 의연해질 수 있다. 사람으로부터 받는 상처와 황망함은 말할 수 없는 '앎'의 기회다. 그 기회의 연속이 바로 우리의 '삶'임을 누구도 부정할 순 없다.
삶의 끝은 앎의 끝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 순간이다.
우리의 앎은 충족되지 않는 결핍이므로, 어쩌면 우리는 끝이 없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