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20년.
서투른 마음으로 입사지원을 한 신입사원은 닳고 닳은 부장이 된 지 오래다. 평사원으로서는 이제 더 이상 진급할 일이 없다. 직장인에겐 월급과 승진이 전부인데, 그중 하나가 없어진 것이다. 물론, 임원이라는 기회는 열려 있다. 그러나 임원 진급은 주식의 오르내림과 같이 신도 모르는 영역이다. 꼭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선배들이 짐을 싸 일찍 집에 가고, 설마 되겠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임원이 되어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 정말 그렇다. 남이 보기에 나는 어느 쪽인지 잘 모르겠다. 임원이 되고 안되고는 시간의 흐름에 맡길 수밖에.
나도 모르게 중년이 된 지금의 나이는 불혹을 한참 지났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봐도 지금까지 회사 다닌 날보다, 다닐 날이 더 짧다. 혹 법적인 정년을 다 채운다 해도 말이다. 이리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진다. 시시포스와 같이 평생을 반복의 아이콘으로 살 거란 생각이 막연했는데, 그 막연함은 어느새 선명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풋내기 시절엔 직장에 대한 푸념이 많았다.
아마도 그땐 이 반복이 영원할 거란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본업의 소중함과 그 안에서 업을 찾아가는 지금의 나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한한 기회를 준 직장에 고마움을 느낀다. 내 돈으론 할 수 없는 것들을 도전하고 경험했다. 오히려 돈을 받으며 무언가를 배운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다. 이것은 단순한 정신 승리나 직장 예찬이 아니다. 나를 중심으로 두고, 회사와 나의 성장을 함께 도모하면서 생각이 바뀐 것이다. 어차피 힘든 직장생활이라면, 그 안에서 내가 얻어갈 것과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고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성과는 곧 회사와 나 둘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회사 이후의 내 삶은 어떨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당장 눈앞에 놓인 업무들이 먼저다. 어쩌면 그것들을 우선하며 나중의 두려움을 덮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지금의 것에 집중하지 않으면 나중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본업의 소중함을 잘 안다. 회사 이후의 내 '업'은 '본업'에서 오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나는 본업에서 배운 것들을 부분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활용하게 될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들 또한 본업에서 배운 역량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다닌 날보다, 다닐 날이 더 짧은 지금.
많은 생각이 오간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본업에 충실하려 한다. 오히려 본업에 충실할 때, 내 삶은 덜 흔들리고 또 다른 아이디어들이 더 활기차게 떠오른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본업이 있을 때 가능하다. 본업이 흔들리면 사이드고 뭐고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젠가 회사를 떠나야 할 때.
나는 고마운 마음이 더 클 것 같다. 수 십 년 동안 일한 나를 어떻게 등 떠밀어 내보낼 수 있느냐고 소리치는 것보다, 아 수 십 년 동안 돈 받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할 것 같다. 꼭 그러고 싶다. 꼭 그러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평생 다닐 수 없을 걸 알면서도, 직장에서 평생 다닐 것처럼 힘들어하던 내 모습을 떠올린다.
다닐 날이 더 짧다는 걸 생각하면 그저 웃음이 난다.
출근해야 할 내일이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다.
회사 다닌 날이 하루 늘고, 다닐 날이 하루 줄어들게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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