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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24. 2021

'본업'에서 '업(業)'을 찾아야 하는 이유

'나를 관통하는 일하기'를 해야 하는 이유

'본업'이란 무엇인가?


임선빈 장인.

경기 무형문화재 30호 북 메우기 악기장. 1988년 서울 올림픽 대북, 청와대 춘추관 북, 통일전망대 북 등 나라의 중요한 북 제작에 모두 참여한 바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북 장인이다. 선천성 소아마비를 앓았던 그는 한국전쟁 통에 고아가 되어 길거리 생활을 하다 한쪽 청력을 상실했다. 이후 열한 살 때 스승인 고 황용옥 선생을 만나 그의 북 공방에 최연소로 입문한 그는 반복하고 버티며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에겐 어떤 사명감이 있었기에 그렇게 최고의 반열에 오르고, 영혼이 깃든 북을 만들어 내었을까?


소아마비 어린아이가 길을 잃고 헤맬 때.

한 중년 신사는 그 아이에게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으니 그 어느 곳으로 가자 했다. 북을 만드는 곳이었다. 스승은 그에게 말했다. "너는 다리가 이러니까, 이걸 안 배우면 천상 너는 업신여김 당하고 살기 힘들다. 그러니까 무조건 배워라." 임선빈 장인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를 악 물고 계속 반복하고 버틴 이유이자 원동력이었다. 


그러니까, 임선빈 장인도 처음엔 그저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불편한 다리를 가진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 품이 그립더라고요. 제일.
그러던 어느 날, 북을 말리던 중 호기심에. 정말 호기심에 그 북을 두들겨 봤어요. 근데 그 북소리가... 지금의 현재 내가 부모님을 그리워해 가지고 애타는 그런 소리가... 내 마음을 이렇게 울려주는 그런 소리가 나와주는 거죠.
그때부터 이 북소리가 진짜 내 인생을 180도 잡아 돌려놓았어요."

- 영화 울림의 탄생 중 임선빈 장인 인터뷰 장면 -


사명감 따윈 없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사소한(?) 시작이 결국 그의 삶을 이끄는 의미가 된 것이다. 그가 본업을 찾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나는 심한 전율을 느꼈다.


'본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도 명쾌한 답을 찾았다.

결국, 본업이란 (사전적 의미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 '주가 되는 직업'인 것이다. 


단순히 처음의 직업을 유지하거나 버티라는 말이 아니다.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얼마만큼 알아채느냐에 따라 '업'의 본질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직업'과 '업'의 상관관계


임선빈 장인의 말에서 심한 전율을 느낀 이유는 바로 '공감'이었다.

'직장 내공' 강의를 할 때, 나는 '직업'과 '업'의 관계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스테르담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강의안


'직업'은 '개인이 사회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수입을 얻을 목적으로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지속적인 사회 활동'을 말한다.

한 마디로, 돈을 벌기 위해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하는 일을 말한다. 이리 보니 '직업'이란 단어의 무게감이 그리 무겁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꾸역꾸역 마지못해 출근하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가벼움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업(業)'이라고 말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왠지 '직업'보다는 뭔가 더 있어 보인다. 월급에 팔랑이는 '직업'보다는 좀 더 고상하고 진중한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자, 그러나 또 하나.

'업'이라는 글자보다 더 묵직한 무게감을 가진 단어가 있다. 바로 '업보'다. '업보'란 '자신이 행한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운명'이다. 우리가 '행한 행위'는 무엇일까? 바로 '일'이다. 즉, 그것은 직업과 관련이 깊다. 


'직업'과 '업' 그리고 '업보'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직업'을 가벼이 여기면 '업'을 찾아낼 수 없고, '업'을 찾아내지 못하면 우리의 '업보'는 어디로 향할는지 잘 모른다.


임선빈 장인의 예로 돌아가, 그는 우연찮게 '직업'을 갖게 되었지만, 북소리에 마음이 요동하며 '의미'를 찾아내었다.

그 '의미'를 찾아내니, 북 메우기는 어느샌가 그의 '업'이 되었고 그 '업'은 그에게 대한민국 최고 장인이라는 '업보'가 되었다. 다른 한쪽 청력마저 잃을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도 그의 업보이겠으나 그의 생애 마지막 북을 만드는 여정이 영화로 만들어지며 또한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업보가 마음이 요동할 정도로 아름답다.


직장인에게도 '업'이란 게 있을까?


한 달 월급에 팔랑이는 삶.

팔랑이는 것은 가볍다. 아니, 자신이 팔랑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벼운 것이다. 우리는 직장인의 삶을 재정의 해야 한다. 월급만큼이 우리의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월급은 많고 적음을 떠나, 어차피 많이 모자란 무엇이다. 그 이상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월급에만 국한하여 우리네를 평가한다면, 계속하여 액수보다 못한 삶을 할게 될 것이다.


무엇을 하고 있냐는 말에 어느 누군가는 벽돌을 나르고 있다고 하고, 또 어느 누군가는 집을 짓고 있는다 말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나사에 방문하여 청소하는 사람에게 무슨 일(역할)을 하고 있냐고 물었을 때, 그 청소부가 "사람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정신 승리를 하자는 게 아니다. 실제로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그 일이 어떻게 성과에 연관되고 있는 지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더불어, 그 일을 회사에만 국한하지 말고 내 일상에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배운 게 도둑질'이란 속담이 있다.

주변에 회사 일을 그만두었거나, 진로를 바꾼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자. 장담컨대, 아무리 다른 일을 하더라도 그 이전의 본업에서 배운 역량과 스킬을 기반으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 하게 되는 일은 대개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도 아니다. 해야 하는 일이고, 내 맘대로 되지도 않는 정말 하기 싫은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일만큼 나를 다그치고 성장시키는 것도 없다. 회사가 아니라면 절대 해보지 못했을, 그리고 안 했을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의미를 찾기보단, 하루라도 빨리 그 일을 안 하거나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하다.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이왕 하기 싫은 일이라면, 무어라도 건져내어야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직업'에서 '업'을 찾아내는 방법


회사라는 조직의 본질을 생각해보자.

조직은 끊임없는 성장과 영속을 목적으로 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회사의 시스템을 보자. 그 시스템은 생존을 위해 축적된 일종의 노하우다. 우리는 그 시스템 안에 들어가 있다. 혹자는 직장인은 부속품과 같이 환멸을 느낀다고 하지만, 우리는 부속품이 맞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어차피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그 시스템의 일원이 되기로 계약서를 쓰고 일을 시작한 게 아닌가? 스스로 싸인해 놓고 무얼 그리 회의하는지 모르겠다. 그럴 시간에 '직업'에서 '업'을 찾아내는 게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대응이다. 


제대로 된 부속품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투덜대는 건 자신을 위해서도 옳지 않다.

부속품의 생활은 영원하지 않다. 언젠간 우리도 우리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때가 온다. 그렇다면 지금의 부속품 역할을 충실히 해내어 많은 것을 배워내야 한다. 그래야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을 굴릴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본업'에서 '업'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자 동시에 비결이다.


'직업'에서 '업'을 찾는 방법은 우리 마음가짐으로부터 시작한다.


첫째, '의미'를 찾거나, 못 찾겠으면 만든다.


글 기고 요청이 왔을 때다.

기고를 마무리하며 해당 플랫폼의 편집자에게 커피 쿠폰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와, 이렇게 좋은 글과 콘텐츠를 널리 알리고 나누는 일을 하시다니, 보람차시겠어요. 멋집니다!"


커피 쿠폰 보다, 편집자는 '보람'이라는 말에 감격했다고 한다.

한 번도 자신이 하는 일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었다면? 나 또한 팍팍한 월급과 반복되는 일 사이에서 투덜투덜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이런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있었을까?


내 일은 언제나 지겹고 답답한 무엇이다.

그러나 한 걸음 떨어져 보면 다른 누군가는 알 수 없는 전문영역이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또는 메타인지하여 스스로를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보이지 않던 것이 곧 '의미'다.


<직장 내공> 책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수 십 년 직장생활을 했는데 돌아보니 남는 게 없다면 너무 서글플 것 같았다. 뒤져보면 무어라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과연, 요소요소에, 특히 내가 가장 힘들어하고 떠올리기 싫어하는 그때에 너무나 큰 의미들이 숨어 있었다.


반복되는 일, 사람들과의 갈등.

의미를 찾아내니 그 모든 경험은 내게 소중한 보물들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일이 지겹다면,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면.

기를 쓰고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찾아내지 못한다면 아예 만들어 내거나.


둘째, '타의성'의 가치를 알아챈다.


엔트로피 법칙이라는 게 있다.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바뀌며, 질서화한 것에서 무질서화한 것으로 변화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이다.


어려운 개념이지만 일상에 적용을 시켜보면 다음과 같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 내 방은 언제나 정리정돈된 상태에서 빛의 속도로 어질러진다. 그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 '자의성'이란 없다.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것이 '자의성'이고, 무너진 그 두로는 자책만이 남는다.


나는 정말 게으른 사람이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일을 하며 월급이 끊긴 적이 없다. 누군가는 월급이 꼬박꼬박 한 것이라 말하겠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내가 꼬박꼬박 했기에 월급이 끊이지 않은 것이다. 알람 소리에 눈을 떠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일으켜 나는 출근과 퇴근을 해낸 것이다. 


만약 내가 직장을 다니지 않았거나,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엔트로피 법칙에 제대로 걸려들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부속품'이라는 것에 대한 회의는 '자의성'보다는 '타의성'이 크기 때문에 오는 정신적 충격이다. 그러나 '자의성'을 가진 부속품은 의미가 없다. 적재적소에 끼워져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다고 나는 '자의성'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자의성'은 '타의성'과 동반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우리는 '자의성'에 대한 환상이 커서 '타의성'에 압도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더불어, 내가 원하지 않는 일.

잘 못하는 일. 해야 하는 일. 하기 싫은 일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를 알아채야 한다. '자의성'으론 절대 하지 않을 일이고, 할 수도 없다. 삶의 진실을 털어놓자면, 우리는 하기 싫거나 해야 하는 일을 배울 때 더 많이 성장한다.


앞서 언급했던 임선빈 장인에게도, 그의 본업이 시작될 때 그에게 '자의성'이란 없었다.

먹고살 길이 없어서, 소아마비로 절룩이는 다리로 업신여김을 덜 받기 위해. 그는 어린 나이에 일을 해야만 했고, 그 일 안에서 그는 비로소 의미를 찾아내었다.


의미가 있었기에 자의로 한 일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타의로 시작했다는 것을 볼 때.

그 시작점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아니, 너무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셋째, 반복이 무엇을 만들어 내는가에 주목한다.


'반복'은 물리적 속성이지만 그것은 추상적인 개념에도 적용된다.

무거운 것을 들었다 놓는 운동은 근육을 생성한다. 마음에 상처 받는 일이 많아지면 우리는 그것이 무뎌짐을 느낄 수 있다. 즉, 마음에도 굳은살이나 근육이 생기는 것이다. 이처럼, 반복은 무언가를 강화한다는데 이견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복은 지루하고 지겹다.

그 반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어쩌지... 란 불안감이 엄습한다. 지루하고 지겨운 일은 가치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매일을 작성하는 보고서.

파워포인트와 엑셀. 회사 VIP를 모시는 의전. 살벌한 기획회의. 인원과 자료 취합. 반복되는 일을 잘 살펴야 한다. 그 안에서 나는 강해지고 있는지, 전문가가 되고 있는가. 아니면 투덜대며 그저 오늘 하루를 넘겨보는데 의미를 두는가.


유명한 무술 영화배우인 이소룡은 '만 가지 발차기를 하는 사람보다, 한 가지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이 더 무섭다'라고 말했다.

갓 구워낸 도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깨버리는 장인 정신은 무수한 반복을 각오한 자기 싸움의 과정이다. '반복'을 업신여겨선 안된다. 그 반복이 나에게 주는 가치와 의미를 깨닫고 알아채야 한다.




나는 여전히 직장인이고 다닐 수 있을 때까지 그러하겠지만, 수많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내고 있다.

글을 써서 책을 내고, 글쓰기는 물론 마케팅과 개인 브랜딩 강의까지 한다. 글 기고와 방송, 유튜브 출연은 물론 기업체, 관공서 및 대학에서 강사로도 초빙된다.


이러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이 모든 과정은 내가 모두 본업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엑셀과 파워포인트로 콘텐츠를 시각화할 수 있는 건 회사에서 그것들을 배웠기 때문이다. 책의 목차는 전체 스토리 라인을 잡고 상대방에게 책의 내용을 어필하는 것으로, 이것은 직장에서 Top management에게 보고하는 것과 같다. 수많은 기획회의와 반복되는 보고서 작업. 이 모든 것을 나는 내 사이드 프로젝트에 활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 대부분의 콘텐츠는 내 본업(직장인, 부모 등)으로부터 나왔다.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는 주재원 시절 이 나라를 누구보다 더 알아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직장 내공>과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는 직장인의 의미 찾기를 기본으로,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와 <견디는 힘>은 부모라는 본캐로부터 마지막으로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는 작가라는 부캐에서 발견한 의미들이다.


다시 정리하여 말하면 내 본업에 충실할 때,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낼 때 나는 더 충만해지고 콘텐츠는 더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정말 헷갈릴 때.

그래서 나는 내 본업에 좀 더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의미를 찾아내고, 그로부터 내 '업'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라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본업'과 '업'의 상관관계.

그 사이엔 누구보다, 무엇보다 중요한 나 자신이 있으며 나를 중심으로 '본업'과 '업'을 오갈 때 삶의 의미는 더 다채로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나를 관통하는 일하기'를 해야 하는 이유이며 그것으로부터 오는, 값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선물을 받아들고 오늘 하루도 한 걸음 더 나아가자고 다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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