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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30. 2022

글로 숨을 쉰다는 것의 의미

내 생각과 마음을 살리기 위해 글을 쓴다.

사람들에겐 저마다 생명줄이 하나 또는 몇 개씩이 있다.

고된 업무를 마치고 집에 왔을 때, 나를 반겨주는 가족들이 나에겐 그 하나다.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운동을 한 후에 하는 샤워, 몸과 마음이 헛헛할 때 잘 구워 먹는 고기가 그렇다. 삶에 활기를 주고, 내가 살아 있구나. 내가 사는 이유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그것들은 내게 있어 생명줄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람은 욕심의 동물이다.

생명줄을 찾고 행복을 느끼면 그것을 만끽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하나 둘 늘려가려 한다. 그것들이 늘어나면 더 좋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내 곧 깨닫게 된다. 또는 '기분 좋음'이 '행복'이라 정의를 내리고 그것에 속아 순간순간의 기분에 좌우되는 나를 발견한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생명줄들을 하찮게 보거나,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마치, 우리가 숨을 쉬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

우리는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지만,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걸 잊고 산다. 너무다 당연해서. 계속해서 반복되어서. 숨 쉬고 있기에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


내가 생명줄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기 기한이 그리 길지 않다.

가족도 아이들이 커갈수록 그 형태와 의미가 바뀌고, 운동 후 샤워나 잘 익은 고기를 맛있게 먹는 건 그 시간이 너무나 짧다. 그 짧은 시간이라도 만끽하는 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내가 숨을 쉬고 있다고 말하는 건 어쩐지 석연치가 않다.


그러다 만난 내 생명줄이 바로 글쓰기다.

쓰다 보니, '나는 어느새 글로 숨을 쉬고 있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글로 숨을 쉰다고 표현한 건, 누군가의 질문 때문이었다.

"직장 다니시기도 바쁘실 텐데, 어떻게 글을 그렇게 꾸준히 쓰세요?"


아마도, 나는 그때 적절한 대답을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그 생각보다 빠르게 대답이 나왔던 걸 기억한다.

"직장인은 마음이 참 많이 힘들고 아프잖아요.
그래서 힘들 때면 글을 쓰고 스스로를 위로해 나아간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글로 숨을 쉬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
숨은 계속해서 쉬어야 하니, 그래서 글을 계속 쓰는 듯하고요."


무언가를 멋있게 말하려, 내 의도를 포장하려 하지 않았다.

대답을 한 나 조차도 그때 깨닫게 되었다. 부지불식간.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글로 숨 쉬고 있음을.


나는 커피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나도 간혹 커피를 마시며 직장 생활을 버틴다. 커피는 직장인의 생명수다. 그렇다면 나는 글쓰기는 직장인의 생명줄이라 말하고 싶다. 아니, 직장인뿐만이 아니라 모두의 생명줄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생명줄이라고 믿는 것들이 하나 둘 나를 떠난다.

또는 내가 놓아버린 것들도 많다. 이제는 내게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기에, 숨을 쉰다고 느끼지 못하기에.


그러나 글쓰기는 다르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숨도 그러하지 않은가. 숨 쉬고 안 쉬고를 내가 정할 수는 없다. 오늘도 글을 쓰는 이유다. 


내 몸과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숨을 쉬어야 하는 것처럼.

내 생각과 마음을 살리기 위해 나는 오늘도 쓴다.


글을 쓰다 보니 또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글로 숨을 쉰다는 것의 의미임을.


숨을 쉬고, 글을 쓰고.

살아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


삶은 또 그렇게.

기어이 글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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