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밑바닥이란 무엇인가

밑바닥은 시작점일까 막다른 끝일까?

by 스테르담

2000년대 초반을 주름잡던 영화배우가 있었다.

주연은 아니었지만 '주연급 조연'이라는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녔고, 그가 나온 영화는 소위 말해 대박 흥행을 이어갔다. 인기에 힘입어 그의 인지도는 올라갔고, 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인기의 온도는 사그라들고 어느샌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는 잊혔다.


그런 그가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 모습을 비추었다.

건달 이미지로 인상 깊은 역할을 해냈던 그는 놀랍게도 종교인이 되어 있었다. 인기를 머금은 시절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초췌해 보이기도 하고, 많은 것을 내려놓은 그 모습에서 그가 사라졌던 시간의 무게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인기가 식어갈 때쯤, 그는 많은 구설수에 올랐다.

술자리 폭행사건, 무면허 운전 적발, 대리기사 폭행 등. 배우로서 재기가 불투명해졌다.

"연속으로 영화가 잘 되고, 또 영화배우로서 자리를 잡으면서 이 정도만 되면 참 좋겠다 싶었던 마음이 변해갔어요."


인기가 극에 달했을 때, 그는 무리수를 두고 배우의 선을 넘어 제작에까지 관여하기 시작했다.

극에 달한 건 인기만이 아니었다. 욕심과 탐욕도 함께였다. 식어가는 인기를 감당하기 어려워, 아마도 그는 구설수에 올랐던 것이 틀림없다.


인생 밑바닥을 찍었다고 생각한 그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음을 고백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을 위로하는 종교인으로 거듭났다. 잠시 뿐일 줄 알았던 그의 변화를 지켜보던 동료 배우도 이제는 신뢰의 찬 응원을 보내고 있다.


유튜브엔 화제가 되었거나 인기가 많았던 사람을 찾아 근황을 듣는 채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전의 명성을 추억한다. 그리고 화려하지 않은 지금의 모습을 고백하며, '밑바닥'이란 말을 자주 꺼낸다.


화려함이 사라지면, 밑바닥이란 말이 남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밑바닥'이란 무엇일까?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밑바닥'이란 무엇일까?


여기, 돈 많고 으스대는 사람이 있다.

돈이 많을 땐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지만, 큰 사기를 당해 돈을 잃은 그의 옆엔 아무도 없었다. 한 끼 식사할 돈이 없어 돈을 빌리려 했지만 거절을 당했다. 아마도,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가 아는 '밑바닥'일지 모른다. 더불어, 우리는 모두 '밑바닥'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곤두박질칠까, 날개를 잃을까,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떠밀리게 될까.


다시 앞의 영화배우 이야기로 돌아가, 잠시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본다면.

어쩌면 그는 제 자리로 돌아갔는지도 모른다. 무명이었던 시절. 다만, 화려했던 인기를 맛봤고 높은 곳에 올라봤기에 지금 있는 곳이 그리 낮아 보일 것이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우매함은, 화려하고 잘 나가던 시절의 부작용이다.


나는 내 삶의 언제를 밑바닥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돌아보니, 역시나 가장 힘들었던 그 어느 때다. 그 시절만큼이나 더 힘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때. 그러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삶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내가 아니다. 세상이 정해주는 등락 속에서, 나는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다. 그래서 어느 지점이 가장 높고, 어느 지점이 가장 낮은 지를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내리막에선, 그제야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높은 곳에 이르렀음은 잘 알지 못하지만, 내리막에선 확실히 급락하는 삶의 곡선을 체감한다. 몰랐던 욕심과 교만. 알지 못했던 자만과 오만. 밑바닥은 삶의 어느 순간에나 우리와 마주하길 도사리고 있다.


내리막길.

또는 밑바닥. 스스로를 돌아보는 그 시간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큰 무언가를 잃은 것에 대한 회한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때로의 회귀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제자리라면.

그것은 또 다른 시작점이 아닐까? 받아들이기 힘들 뿐. 공수래공수거의 말을 돌이켜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없다.


내 인생의 힘들었던 시간, 밑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그때에 나는 그것이 시작점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럴 여력도, 힘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야 돌아보건대, 어찌 되었건 나는 그곳에서 다시 시작했음을 깨닫는다. 굳이 내가 지정하지 않아도, 그곳은 어느새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인생의 밑바닥은 시작점일까, 막다른 끝일까.

나는 그것의 답을 보류한다. 어느 곳이 밑바닥 인지도 모르고, 밑바닥을 마주했다 한들 그것을 시작과 끝으로 규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오늘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분주한 존재이므로.

그저 주어진 지금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 와중에 아마도 나는, 인생의 꼭대기와 밑바닥을 이리저리 오가게 될 것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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