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은 타인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방향 지시등을 켜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차량.
직진 우선인 합류도로에서 머리를 먼저 들이미는 차량. 1차로에서 당당하게 저속으로 정속 주행하는 차량.
우리 속은 뒤집어진다.
참지 못해 경적을 울린다. 경적을 울릴 정도면 우리 속은 이미 새까맣게 타들어가 있거나, 분노가 명치를 지나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상황이다. 운전대를 때려 부술 기세로 누르는 경적의 소리는 짧지 않고 길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그 안엔 분노가 녹아 있다. 그 분노가 경적을 타고 상대방의 차량에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경적은 허공에서 휘발되기만할 뿐. 그 차량들은 그저 제 갈길을 간다. 간혹 시비가 붙지만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다. 되려 삿대질을 할 뿐이다.
결국, 속 타는 건 우리이고 우리가 말하려던 의도와 감정은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차량'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그것을 운전하는 것은 '사람'이므로.
이러한 일은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운전도 삶에 속하므로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운전'은 삶의 그러한 부분을 농축하여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차량처럼, 나를 가로막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 나게에 피해를 주는 사람들. 저 사람만 없었으면 내 삶이 이처럼 힘들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많고 많은 사람들.
그들에게 소비하는 감정은 말할 수 없는 낭비다.
그것이 낭비라는 것을 알면서도, 차오르는 분노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다시 도로 위로 시선을 옮겨 보자면, 우리를 괴롭히고 피해를 주는 차량들은 그저 저들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운'이라는 말로 표현하여, 우리는 그들 옆을 우연히 지나가게 된 것뿐이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삶과 인생이라는 도로 위에서, 우리는 그들을 우연히 만났고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피해를 주려 한다기보단, 그들 삶의 양식과 방향 그리고 방법이 우리와 상충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내 삶의 방향과 방법이 누군가에겐 괴로운 눈엣가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상충과 갈등에서, 우리는 감정을 드러내고 그들을 바꾸려 하거나 내 분노를 전하려 한다.
그러나 허공에 뿌려지고 휘발되는 경적처럼, 절대 그것은 곧이곧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감정 안에 들어 있던 건 '메시지'다. 그것을 경적으로, 감정으로 포장하는 순간. 내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상대에게 전해지면, 강한 염산에 뿌려지는 먼지 가루처럼 녹아 없어진다. 그저 상대방의 감정에 불을 붙이는 결과만 초래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제대로 운전하고 있었더라도, 경적을 울리는 순간 상대방은 잘못을 뉘우치거나 인정하기보단 서로를 위협하는 이전투구가 될 뿐이다.
얌체 차량이 내 앞을 가로막을 때.
그래서 나는 이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읊조린다. 이것은 꽤 효과가 크다. 경적을 누르는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 편한 건 내 마음이다. 어차피 전달하려 해도 전달되지 않는 내 감정과 메시지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분노는 스스로에 먹이는 독약과 같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얌체 차량이 된 적도 있고, 될 수도 있다는 걸 돌이키면 마음은 한층 더 고요해진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
나를 속이는 사람들.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인다.
저마다의 삶이 힘겨우니 그런 거라고 내 마음을 잠재운다.
편해지는 건 다름 아닌 내 마음이다.
운전이든, 삶이든.
그 모양새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오늘 하루 또 깨닫는다.
[브런치 x 와디즈 수상] 인문학 글쓰기 & 출간 펀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