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착각

하루는 그렇게 흐르고, 우리는 기어이 숨을 쉬고 있다.

by 스테르담

유럽 여행 중 어느 나라에서였다.

나는 새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나에게 활기참이었다. 아침의 스산한 공기와 함께 다가 온 그 소리는 여행의 기분을 만끽하게 했다.

'그래, 뭐가 달라도 다르네. 유럽의 새소리는 뭔가 더 청명한 것 같기도 하고.'


이래서 여행을 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루의 시작이 좋았다. 그래서 그날의 여행은 많이 걸었고, 많이 지쳤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하루로 기억된다.


그런데 오늘, 나는 그 새소리를 또 듣게 되었다.

여행 중이 아니었다. 집 근처에서였다. 똑같았다. 다르지 않은 그 청명함을 나는 어느 멀리 유럽 어느 나라가 아니라, 내 집 근처에서 듣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소리는 분명 내 주위를 맴돌았을 것이다.

내 일상과 함께 그 소리는 언제든 울려 퍼졌을 것이다. 그것을 듣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듣고도 기억하지 못한 것인지.


나는 결국, 특별함을 여행에서 찾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이기에 모든 게 특별하다 생각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일상에서, 내 주위에서 나는 왜 그 아름다운 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왜 나는 그 청명함을 기억해내지 못한 것일까?


익숙함은 축복이자 저주다.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선물이지만, 그저 그런대로 삶이 흘러가게 하는 서서히 나를 죽이는 독약과도 같다.


여행은 일상이 있을 때 가능하다.

돌아올 곳이 있어야 여행도 의미가 있다. 물론, 방랑에도 의미는 있다. 그러나 영원한 방랑은 없다. 날아다니는 새에게도 발은 있다. 언젠간 땅을 짚어야 하기 때문이다.


착각을 바꾸기로 했다.

일상을 여행과 같이. 여행을 일상과 같이. 익숙함을 낯설게. 낯섦을 익숙하게.


교차하여 바라보는 세상은 꽤 흥미롭다.

미물이라 생각했던 내가 특별해 보이고, 특별하다 생각했던 나는 이내 하찮아진다. 그 사이와, 그 반복 속에서 나는 내가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오르고 내림과 특별함과 평범함을 오가는 그 경계의 면에 있을 때, 나는 비로소 내 심장에 펌프질을 스스로 해내고 있는 것이다.


착각은 언제나 자유다.

그 자유 안엔 생각하지 못했고, 인식하지 못했던 진실과 진리가 있다.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지는 소리와 온갖 자극들을 특별하게 되새겨 보기로 한다.


일상인지 여행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상이 나를 평범하게 만들고, 여행이 나를 특별하게 하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달은 이상. 나는 착각에서 깨어 또 다른 착각을 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일상과 여행의 착각 속에서.

하루는 그렇게 흐르고, 우리는 기어이 숨을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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