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유산보다 위대한 유산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인생 나눔 교실]에 기고된 글입니다.
한 아이는 커서 남자가 되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만나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 부부는 어느새 부모가 되었습니다.
언제 어른이 되냐던 그 아이는 정신 차려보니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던 겁니다.
제 개인적인 꿈은 '아빠'였습니다.
그 앞엔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꼭 가져다 쓰고 싶었습니다. 어릴 적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결핍이, 아마도 그 꿈을 꾸게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홀로 부딪치며 배워온 삶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내 아이들이 태어나면 알려주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살면서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에 대해 말이죠.
이것은 '막대한 유산'이 아니라, '위대한 유산'에 관한 것입니다.
당장의 답을 주기보단, 질문하는 법을. 물고기를 잡아 주기보단 물고기 잡는 법을. 한 마디로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편지로 써 내려갔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는 '마음', '인생', '진리' 그리고 '지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살이가 그리 만만하지 않은 요즈음. 이 글을 읽어 주시는 여러분과 이 중 세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저의 초등학교 3학년 때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책가방을 멘 어깨가 구부정하고, 땅만 보며 걷던 아이. 그 모습은 심적인 왜소함 그 자체였습니다. 바닥을 보며 걷던 이유는, 아마도 바닥으로 떨어진 자존감을 찾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그때 저는 어린 나이였지만 혼란스러웠던 것이 분명합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항상 밖에 계셨던 어머니. 집안 사정으로 인해 방황하는 누나. 홀로 남은 저라는 어린아이는 외로웠을 겁니다. 그 어린 나이에 나는 누구이고, 왜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를 고민할 정도로 말이죠.
그때의 깨달음은 저를 좀 더 빨리 성숙하게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도, 돈도, 꿈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닫고 난 후 말이죠.
그래서 저희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태어나서 아빠와 엄마를 가장 먼저 만난 것 같겠지만, 그렇지 않단다. 너희는 너희 스스로를 먼저 만나게 되었어.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는 것도 가족이나 친구도 아닌, 너희 자신이란다. 그래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법을 알아가야 해. 엄마와 아빠는 너희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은 너희들 몫임을 잊지 마."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아빠가 정답이라고 믿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라고 강조하며 저는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데 누군가의 허락은 필요 없단다."
아마도 누군가 인생에 대한 정의를 미리 말해줬다면, 제 삶의 방황은 조금은 덜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무섭게도 빠르게 흘러가는 삶이란 시간 속에서 저는 정신을 차려야만 했고, 잠시 숨을 돌려 저 자신을 돌아봤을 때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세상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첫째, 인생은 '방향'이다.
무언가를 열심히 했다고 믿는데, 기대하지 못했던 허무함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열심히 뜀박질했는데 결승선은 저 반대에 있던 겁니다. '방향'을 설정하지 않고 내달린 결과는 그토록 뼈아팠습니다. '방향'에 대한 중요함과 소중함은 아이들에게 생각날 때마다 이야기를 해줍니다.
둘째, 인생은 '과정'이다.
살다 보면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좌절하고, 아파하고, 실패하고. 그러나 그 순간이 모여 오늘의 나는 성장합니다. 실패와 좌절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그 순간을 '과정'으로 여기는 겁니다. 그러하면 '의미'가 튀어나오고 다음을 위한 준비운동이 되는 것이니까요.
셋째, 인생은 '어떻게'가 아니라 '왜'다.
무언가를 이루려 할 때 우리는 '어떻게'에 매몰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왜'입니다. 방법만 추구하다 그 본질을 잊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돈을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돈을 버는 이유를 명확히 해놓지 않으면 우리는 돈의 노예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생의 '방향'을 생각하고 '과정'을 즐기며, '왜'라는 질문을 자꾸 던지는 하루가 되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바라고 또 바라고 있습니다.
"전력을 다해 시간에 대항하라!"라는 톨스토이의 말을 저는 좋아합니다.
시간 앞에 우린 속수무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간에 저항할 수 있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강조합니다.
첫째, 독서
둘째, 운동
셋째, 사색
마지막으로, '생산' 또는 '생산을 위한 소비'
독서와 운동 그리고 사색은 없는 시간을 내어서라도 해야 합니다.
시간 나서가 아니라 시간을 내어서라도 말이죠. 그래야 시간에 대항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더불어,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언가를 생산해내야 합니다.
저의 글쓰기도 너무 소비적으로 사는 것 같다는 물음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제가 생산할 수 있는 걸 찾다가 시작한 게 글쓰기였던 겁니다. 하여, 지금은 소비를 하더라도 생산을 위한 소비인지를 묻고 또 묻습니다.
"시간을 내어서 살자. 시간 나는 만큼 살지 말고."
아이들은 물론, 저에게도 매일매일 던지는 말입니다.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의 표지를 넘기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내 두 아들과 홀로 삶을 배우느라 수고한 젊은 날의 나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언젠가 능력이 된다면 아이들에게 건물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능력 여부를 떠나, 제가 우선으로 주고 싶은 건 '막대한 유산' 보다는 '위대한 유산'입니다.
살면서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언젠가 이것이 막대한 유산보다 더 빛을 발할 날이 올 거라고 저는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