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질문을 던지고 세상을 뿌옇게 바라본다.
햇살이 좋았다.
운전을 하는데 시야가 밝았다. 눈에 들어차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교통 체증도 이 아름다움을 어쩌진 못했다. 짜증이 나기는커녕, 앞 차에 반사되는 햇살이 그저 눈부시고 좋았다.
적당한 온도.
환한 세상. 무엇보다 모든 것이 선명해 보이던 그 순간.
아마도 나는 그 선명함에 혹했던 것 같다.
나는 삶이 선명하길 바란다.
그렇게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던 그날과 같이 말이다.
표가 나게.
뚜렷하게.
다른 것과 혼동되지 않도록.
삶의 혼돈은 선명하지 않은데에서 온다.
선명하지 않다는 건 표가 나지 않고, 뚜렷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혼동스럽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
지금의 선택이 맞는지 모르겠는 불확실함. 심지어는 (그때는 맞았으나 지금은 틀린) 과거조차 지금의 나를 헷갈리게 만든다.
그러나, 삶은 어디까지 선명해질 수 있을까.
시력이 어느 숫자를 넘어 버리면 세상을 곧이 보지 못한다. 아니, 눈을 뜰 수 없을지조차 모른다. 안경을 벗고 바라보는 뿌연 세상이 티 없이 좋아 보일 때도 있다. 세상 전체를 포토샵 한 것처럼.
선명함을 바라는 내 마음은 선명하지 않다.
선명하지 않아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나는 경우도 있다. 눈에 뵈는 게 없을 때 나는 용감해질 수 있으니까.
삶의 선명함은 어디까지가 가장 적당할까.
선명한 답 없이, 나는 오늘도 질문을 던지고 세상을 뿌옇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