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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16. 2022

될 일은 되고, 안될 일은 안된다.

그렇게 많이 애쓰지 말아야지

외국인이 한국말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들으면 식겁할 만한 말이 있다.

'엄마손 파이'가 그렇고, '애를 먹다' 또는 '애를 쓴다'도 그렇다. 엄마가 정성스레 만들어 주신 파이가 무슨 문제일까 갸우뚱할 수 있지만, 익숙함을 벗어나 보면 무서운 말로 돌변할 수도 있다. '애를 먹다/ 쓰다'도 마찬가지다. 이 '애'가 그 '애'가 아니란 걸 우리는 알지만, 낯선 이의 눈엔 그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애'는 순우리말로 '근심에 싸여 초조한 마음속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애를 먹다/ 쓰다'란 말은 그래서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는 모습'을 뜻한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그렇게 '애'를 많이도 먹고 또 많이도 쓴다.


우리네 삶은 팍팍하기 때문이다.

어느 하루도 쉽사리 흘러가지 않는다. 혹시라도 쉽사리 흘러가는 날이 있다면 그것은 폭풍 전야와 같은 날이다. 이내 폭풍을 맞이하였을 때, 우리는 결국 쉽사리 흘러갔던 그날을 후회하고 한탄한다. 쉽사리 보내지 말았어야 했나를 되뇌며 그보다 더 큰 애를 쓰며 하루하루를 버티어 나간다.


돌아보면 내 젊은 날은 애먹고, 애쓴 나날들로 채워져 있다.

욕심도 많았고, 욕망도 컸고. 무엇보다 손해 보려 하지 않으려 했던 마음이 더 악착같이 하루하루를 살게 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만치 악착같을 수가 없다.

느슨해지는 뱃살 근육처럼, 이제는 무언가를 살짝 놓아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중년의 책임감은 무겁지만, 어쩐지 이러할수록 힘을 빼야 살아낼 수 있다는 본능적 감각이 올라오는 것이다.


문득, '될 일은 되고, 안될 일은 안된다'란 생각이 훅 올라왔다.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고, 그것은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해가는 와중에 나는 그것에 동의하기로 했고 이제는 그렇게 많이 애쓰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을 안고 살아간다.


논리적으로 보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때도 있다.

노력하고 애를 썼으니 무언가가 이루어진 것 아니겠나. 그러나 그러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것들이 분명 있으며, 삶은 인과 관계가 불명확한 불완전한 게임이라는 걸 돌이켜보면 내가 사용하는 에너지가 정말 의미가 있나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럼에도 죄책감은 들지 않도록 매사 열심히 그리고 잘 노력해야 함은 잊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잘 되면 좋은 것이고 안 되면 안 되는가 보다라며 긍정적 체념을 하다 보면, 될 일엔 평소대로 힘을 쓰고 안될 일에는 굳이 더 큰 애를 쓰지 않아도 되는 그 손익 분기점을 좀 더 명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지혜가 생길 테니 말이다.


삶은 어렵고도 쉽다.

또한 쉽고도 어렵다.


될 일과 안될 일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또 누가 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오롯이, 그것을 내 삶에 들임으로써 나는 넘어지고 또 일어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된다.


되어야 하는 일 따윈 없고, 안되어야 하는 일 따위도 없다.

모든 것은 나를 스쳐가는 풍경이며, 그 풍경 안에서 나는 살고 있음을 오늘도 내 속으로 침잠하며 당연한 것을 또 새삼스럽고 새롭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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