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삼켜도 나는 소화하지 못할 테니까.
세월이 갈수록 기쁘고 좋은 일보단 그러하지 않은 것들이 더 많다.
기쁘고 좋은 일의 강도와 빈도가 줄어드는 것일까?
물론, 그렇다.
그러나 그것과 더불어, 좋은 일을 느끼게 하는 감각이 무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닳고 닳지 않는가. 닳고 닳은 건 몸뿐만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 그리고 감정과 감각도 그렇다. 단적인 예로 생일이 그러하다. 어릴 땐 마냥 좋았던 그날이, 이제는 아무 날도 나에겐 아니고 오히려 나이를 먹어가는 서러움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기쁘고 좋은 일도 이리 무뎌지니, 좋지 않게 느껴지는 건 또 얼마나 쉽게 다가오고 마는가.
'먹는 것'이 그러하다.
생각보다 많이 먹지 못하는 지금의 이 순간이 나는 서글프다.
끼니를 거르면 매가리가 없는데, 그렇다고 챙겨 먹으면 속은 더부룩하다.
어쩌란 건지를 모르겠다. 삶의 농간인지, 누군가의 계략인지. 세월이 가면 갈수록 약 오른 일만 늘어난다. '삶'은 '농(弄)'이라 말하고 싶은 이유다.
요전 날엔 전력질주를 하다 넘어질 뻔했다.
내 생각은 저만치 앞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몸은 요 만치 밖에 못 가면서 일어난 일이다.
생각과 몸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식탐과 소화의 간극도 크다.
결국 바꿔야 하는 건 내 생각이다.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몸을 바꿀 순 없는 노릇이니.
생각을 바꿔야 남은 삶이 편하다.
생각을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있는 그대로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여야 바꿀 수 있고, 받아들여야 떨쳐버릴 수 있다.
이제는 내 속의 부대낌을 고려하지 않고 입에 무언가를 욱여넣는 것을 그만하려 한다.
식탐도, 삶에 대한 탐욕과 욕심도.
어차피 삼켜도 나는 소화하지 못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