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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25. 2022

글쓰기에 필요한 역량 -⑩(자기)의심-

물음표를 던지면 그제야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의심'이라는 무기


'의심'이란 말은 그리 긍정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의심을 조금씩 키워가자고 다짐한다. 의심은 나를 지켜주는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삶이란 호락하지 않고, 타인은 시시때때로 나를 속이려 한다. 몰라서 속고, 알면서도 속는 게 삶이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고, 세월이 더 흘러 나이가 많아지면 의심이 더 많아야 한다.

어린 시절 어른들의 의심을 보면 그것을 혐오하곤 했으나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리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속지 않고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어쩌면 더 의심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아니, 분명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의심을 키워가자고 다짐하는 이유다.


의심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그러나 의심은 '잘'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잘'의 기준은 바로 '생산'과 맞물려 있다. 소비적이고 소모적인 의심은 말 그대로 '의심병'에 국한된다. 본질을 알지 못하고 그저 믿지 못하는 마음. 누군가를, 무언가를, 어떤 것을 밑도 끝도 없이 의심한다는 건 삶을 피폐하게 하는 고속버스에 올라타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잘'의심하여, 그 본질을 지킬 수 있는 의심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의심의 뜻 엔 두 가지 근본이 있다.

첫째, 믿지 못한다는 것.

둘째,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것.


좀 더 잘, 그리고 생산적으로 의심하려면 두 번째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즉, 믿지 못하는 것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알 수 없다는 건 모른다는 것이고, 모르는 것에 우리는 '질문'을 해야 한다.


또 하나.

의심의 화살을 'Inside out'이 아닌 'Outside in'으로 그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이 순간, 나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스파크가 일어나고 못 미덥고 그저 미웠던 세상에 대한 분노는 사그라든다.


이 순간이, '의심'이 내 삶의 무기가 되는 시점이다.


의심이라는 질문


의심에서 촉발된 질문은 집요하다.

더불어, 꽤 의미가 있다. 의심을 그저 나쁜 것으로 간주했을 땐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된다. 그 물음표를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건 그리 친숙한 일이 아니다. 바쁘게 사느라, 정신없이 지내느라 가장 중요한 나를 저 뒤에 놓고 뛰는 게 우리네 삶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온갖 의문을 품고 그것을 하나하나 알아가더라도, 지식의 충만함이 우리 자신을 구원해주진 않는다.

오히려 지식의 저주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많이 알아야 한다는 사회적 정서는, 정작 우리 자신을 모르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많이 알면 무엇이 좋을까?

그마만큼 나 자신은 알고 있는 걸까?


물음표를 던지면 그제야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인문학의 시작이자, 글쓰기의 시작이기도 하다.




나는 나 자신을 믿지 못한다.

더불어, 나 자신을 확실히 알 수 없다. 믿지 못하기에 잘 알 수 없고, 잘 알 수 없기에 믿지 못한다.


그래서 예전엔 나 자신이 미웠다.

나를 믿지 못하는 나를 쉽게 받아들이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젠 믿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춘다.


알지 못하니 질문을 던진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하나 찾아갈 때, 나는 비로소 나 스스로를 조금씩 이해해간다.


이것이,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자, 내가 글을 끊임없이 쓸 수 있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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