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의 것을 진솔하게 꺼내어 놓는 것이 필력이다.
글쓰기를 머리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머리로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식으로 쓴다는 것이다. 지식으로 쓴다는 건 알고 있는 걸 쓴다는 것이고, 무언가를 쓰려면 아는 게 많아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머리를 꽉 메우고 있던 것이다.
더불어, 무언가 고상하고 특별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쉽게 보이는 걸 두려워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은 내가 내어 보이는 속의 것이므로, 겉모습도 그러한데 속 모습까지 쉬이 보인다면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을지 모른다는 마음. 어려운 단어와 쉽게 읽히지 않는 문장을 구사하면 마치 사람들이 나를 작가로 대우하고 우러러볼 것만 같았다.
그러나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했던 모든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불혹이 넘을 때까지 글쓰기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중년의 아픔과 인간적인 회의감. 죽어라고 뛰었는데 정작 나를 뒤에 두고 온 헛헛하고 허무한 마음은 결국 나로 하여금 글쓰기라는 지푸라기를 잡게 했다.
그때 알았다.
글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쓴다는 걸.
머리는 게으르고, 마음은 분주한 법이다.
백 날 머리로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글을 쓰라고 펜을 들게 만든 건 마음이었던 것이다.
마음으로 쓰기를 시작하니 글쓰기의 기적이 시작되었다.
물밀듯 쏟아져 나오는 글감과 소재들을 나는 주체할 수 없었다. 어렵게 써야지... 고상하게 써야지란 머릿속 차단기를 들어 올리니, 그저 나는 내어 놓으면 되었고 굳이 고상하게 내용이나 표현을 비비 꼬을 필요가 없었다.
용기가 생겼다.
자신감이 생겼다.
더 많은 글감과 소재도 생겼다.
필력을 운운하자면 나는 아직도 멀었지만, 자신할 수 있는 건 나는 어렵게 쓰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마음으로 술술 풀어낸 글은, 읽는 사람도 술술 읽으면 된다. 만약, 어려운 개념을 이야기하거나 무언가를 설명해야 한다면 그 또한 쉽게 써내야 함을 나는 안다. 그게 진정한 필력이다.
조지프 퓰리처의 유명한 말을 떠올리면 더 잘 이해가 될 것이다.
무엇을 쓰든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러면 이해될 것이다.
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 속에 머물 것이다.
요약하자면 쉽게 쓰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쉽게 읽히도록 쓰라는 말이다.
얼마나 쉽게 써야 읽는 사람이 그것을 머릿속 그림으로까지 그려낼 수 있을까.
쉽게 쓰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렵게 쓰지는 말아야 한다. 특히나, 있어 보이려 그러한다면 나는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
어렵게 쓰지 않는 것이 진정한 필력이다.
속의 것을 진솔하게 꺼내어 놓는 것이 필력이다.
이 필력을 소지하고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써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매일을 멈추지 않고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의 외침이자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