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함을 줄이면 글의 양은 늘어난다.
나는 양(量)의 글쓰기를 지향한다.
양이 많아지면 글은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네온사인 이론'이라 명명한다. 글 하나가 네온사인의 한 전구라면. 그 전구가 빽빽할 때 불빛은 들어오고, 그것은 더 큰 차원의 의미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양의 글쓰기를 했고, 그 글이 모여 스스로 세계관을 형성하고 이곳저곳에 내 이름을 알리고 있다. 더불어 브랜딩이 형성되고,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되어 월급 외의 파이프라인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글쓰기의 초기엔 주저함이 많았다.
잘 쓸 수 있을까? 내가 써도 될까? 쓴다 한 들 그 누가 봐주기라도 할까?
이러한 주저함을 넘어섰을 때, 나는 마침내 양의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글을 쏟아내는 나를 보고 많은 사람이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글을 끊임없이 써내고 있는지, 많은 글을 내어 놓고 있는지.
주저함을 줄이면 글의 양은 늘어난다.
이것이 내 비법이자, 결론이다.
주저함이 주는 한계는 명확하다. 주저함은 온갖 이유를 갖다 대어 글쓰기를 방해하고, 글쓰기를 향한 열정과 자존감을 축소시킨다. 필력을 운운하며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하게 하고, 양은 어느 정도로 써야 하는지 신경 쓰게 만들고, 메모와 같은 것도 글이 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한 마디로,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백만 스물 하나의 이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글쓰기가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표현하는 글도 어려워야 한다고 믿는다. 읽는 사람이 쉽게 읽으면 그건 수준이 낮은 글이라 생각하는 정서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실력자는 쉽게 쓴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술술 읽히게 하는 글을 지향한다. 어렵게 써야 한다는, 고상한 단어나 어려운 문장을 구사해야 한다는 주저함 앞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더불어, 자신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마음을 기록하는 모든 것은 글쓰기라고 볼 수 있다.
짧은 메모, 감정에 못 이겨 휘갈겨 쓴 일기, 마음 잡고 천천히 써 내려간 내 최초의 에세이까지. 탑을 쌓듯이 서론, 본론, 결론을 완벽하게 세워야만 글쓰기라고 생각하는 건 주저함의 가장 흔한 레퍼토리다.
주저함 없이 쓰는 것엔 위력이 있다.
앞선 문장에서 눈치채었는지 모르겠는데, 글쓰기는 작문이 아니라 '내어 놓는 것'이다. 내 안의 것. 내 머리와 마음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어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글쓰기'다. 어디 멀리서 무언가를 가져와 쓸 필요 없다. 주저함 없이 내 속의 것을 내어 놓으면 된다. 당장 누군가에 보이기 그러하다면, 혼자만 봐도 된다. 양의 글쓰기를 통해 실력을 올렸을 때, 그것들을 고쳐 다른 누군가에게 내어 보여도 늦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도 양의 글쓰기를 지향할 것이다.
양의 글쓰기는 결국 '질(質)'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앞으로도 주저함 없이 글을 써 내려갈 것이라는 나의 다짐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전하는 나의 간곡한 종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