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그렇게 스스로 가난을 자처해야 한다.
나는 배고파서 연기했는데 남들은 극찬하더라.
그래서 예술은 잔인하다.
배우는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가장 잘한다.
- 배우 윤여정, 무르팍 도사에서 -
글쓰기는 결핍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결핍'은 '가난'을 대체로 뜻할 수 있다. 모자라거나 넉넉하지 못함을 상통하고 있으며, 물질적인 것이나 비물질적인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으니까.
실제로 나는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그 둘을 충족시키고 싶었다.
순서로 보자면 '비물질적인 것'이 먼저였는데, 그것은 바로 내 마음이었다. 글을 쓰기 전 내 마음은 참으로 가난했다. 그 가난함은 내 마음에 '욕심'과 '욕망'이란 씨앗을 뿌렸고, 옆 사람을 밟아서라도 무언가를 쟁취해야겠다는 사회적 괴물이 되는 원인이었다. 그렇게 해야 부족한 것이 채워지고, 삶은 넉넉해질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삶은 점점 더 허무해지고, 내가 밟은 것은 다름 아닌 내 마음과 영혼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치열하게 살았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은 손아귀를 보며 내 마음은 참 가난했었구나.. 란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무언가 생산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나는 글을 썼다.
이 '생산'에는 물질적인 것도 포함된다. 월급은 항상 빠듯하다.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직장인은 매월이 마이너스인 존재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출근하여 꼬박꼬박 만들어내는 월급의 미스터리. 작지만 꾸역꾸역 살아낼 수 있고, 크지 않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능케 하는 게 월급이다. 그러니, 월급에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더 보태면 살림살이가 나아질 거란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N잡의 시대가 열린 이유기도 하다. 글쓰기는 직장인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잡'이다. 다들, 거나한 책 한 권 써서 인세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바람 하나 정도는 마음 한 편에 두고 살지 않나. 글쓰기의 시작에 갖게 되는 로망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의 그림에 자화상이 많은 이유는 모델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린 해바라기 꽃의 버전이 여럿인 이유도 이와 같다. 같은 꽃을 여러 개 그린 덕에 우리는 그의 보다 많은 작품을 누리고 있지만, 실상은 그의 가난함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가난했던 그가 그린 그림이 네덜란드라는 한 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작품은 위대하다. 만약.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가 부자였다면, 그러한 작품이 나왔을까? 하늘에 소용돌이치는 별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프랑스의 어느 어두컴컴한 골목을 노란색으로 칠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정신은 그를 아프게 했지만, 가난으로 아픈 그 마음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작품으로 탄생하게 했다.
역사적으로 예술은 가난함에 기인한다.
나는 그것이 꼭 물질적인 것의 가난함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우리의 글쓰기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결핍, 가난, 아픔. 또는 그와 반대되는 기쁨과 희열까지. 부족함과 차고 넘침의 반복은 마음을 요동하게 하고, 그로 인하여 우리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무언가가 부족할 때 예술은 시작되고 그 경지가 더 높고 깊어지는 것은 가난함과 예술의 상관관계를 역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하나의 단서라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글을 쓸 때 내 부족함을 돌아보려 노력한다.
아니, 그 부족함이 오늘도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이다. 부족함을 채워 나가는 건 가난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며, 그 욕망으로 인해 나는 오늘도 한 걸음을 더 내딛게 된다.
작가는 가난할 때 글을 잘 쓰게 된다.
풍족한 무언가가 마음을 가득 채울 땐 쓰지 못했던 것들. 돌아보지 않았던 것들. 그저 핑크빛인 세상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는 마음은 자신을 잊게 만듦으로. 가난해져 봐야 그때서야 우리는 '아차...'싶어 하고, 그제야 우리는 스스로를 보듬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그렇게 스스로 가난을 자처해야 한다.
배우 윤여정 씨가 말한 것처럼, 가난은 무언가를 하게 만드니까.
그것도 매우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