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루팡'
'프리라이더'
'월급 루팡'은 국립국어원이 2011년 7월 1일부터 2012년 6월 30일까지 한 해 동안 일간지와 인터넷 등 139개 매체에서 사용한 신조어를 정리한 <2012년 신어 기초 자료> 보고서에 실렸다.
'월급'과 도둑의 대명사인 프랑스 괴도 소설 주인공 '루팡(Lupin)'을 결합한 단어다.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이들은 주로 '하는 업무가 없는 데도 바쁜 척 하기', '업무 시간에 다른 일하기', '자신의 업무를 다른 직원에 전가하기'등의 행태를 보인다.
'프리라이더'는 원래는 요금을 내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선 조별과제나 프로젝트에 아무런 노력이나 참여를 하지 않고 결과만 취하려는 사람을 말한다.
이 또한 어학사전에 단어를 넣으면 뜻이 풀이된다.
고로, 한글과 영어가 혼합된 이 말은 모두 어학 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말이다.
사전에 어느 단어가 등재되었다는 것은 곧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나, 그것이 신조어라면. 본래 사전은 있는 단어의 뜻을 찾는 게 주 용도인데, 현대 사회에 이르러 사회가 복잡화되다 보니 신조어는 양산되고 모두가 알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사전에 등재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체 어떻게 회사에 들어왔을까?
그러한 사람을 볼 때 우리네 기분은 그리 썩 좋지가 않다.
어렵게 입사한 회사이고, 고도의 업무를 해야 하는 직장인데. 대체 어떻게 저 사람이 내 옆에 있을까란 의문이 들면 마음이 편치 않게 되는 것이다. 마치 주변 모두가 하향 평준화되는 느낌. 저 사람이 들어올 정도라면, 내가 어렵게 들어온 그 의미와 가치는 훼손되고 그나마 있던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곤두박질치는 순간이다.
그러게.
대체 이 사람들은 어떻게 회사에 들어오게 된 걸까? 그리고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걸까?
'월급 루팡'과 '프리라이더'를 통합하여 '그들'이라고 명명해보자.
그들은 '선천성'과 '후천성'으로 나뉜다. '선천성'은 원래 기질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후천성'은 직장생활을 해가며 그렇게 변화하는 사람이다. 물론, 복합형도 있다. 원래 그러한 사람이, 그러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중요한 건, 그들이 어떻게 내 옆에 있느냐 인데 '후천성'은 그나마 이해가 된다. 들어올 땐 멀쩡한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선천적으로 게으르고 일을 전가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들의 기질을 숨겼을 것이 틀림없다. 원래 서류나 면접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최선과 최상을 말한다. 그러하니 사실 변별력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건, 이미 우리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는 '게으른 천재'일 가능성도 있다. 게으르려면 똑똑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부담은 최소화하고 효율을 높이려는 그들의 기질이, 어려운 관문을 뚫고 들어온 것으로 해석된다.
나는 '그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나?
그런데 재밌고도 섬뜩한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면.
우리도 사실 누군가에겐 '저 사람'이고, '그들'이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으며 아무것도 안 하고 일을 전가하는 김 부장이나, 교묘하게 광만 팔고 결과만을 빼먹는 이대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돌이켜야 한다. 그러하면 남들도 이해가 된다. 우리는 언제나 일을 열심히 그리고 잘할 수가 없다. 사람이 어떻게 그러할 수 있겠나. 컨디션은 등락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 우리는 슬럼프와 번아웃을 겪는다. 직장인의 슬럼프는 3년, 3개월, 3주, 3일 그리고 3시간. 심지어는 3분마다 온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 상황이니까.
그만큼 직장 생활은 다이나믹하고 안쓰럽다.
이 상황에서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타인도 마찬가지다.
일 잘하던 사람이 못할 수도 있고, 때로는 개인사로 힘들어 일을 제때 쳐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용서받거나 정당화될 일은 아니다.
직장은 모두가 계약 존재이고, 사람이라기보다는 '인적 자원(Human Resource)'이므로 우리가 리모컨 버튼을 누르면 TV가 켜지듯이 출근하면 우리는 '업무 전원'을 켜 각자의 몫을 (무조건) 해내야 하는 게 맞다.
여기서 떠올려야 하는 단어는 바로 '관용'이다.
'관용'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그저 눈감아 주는 게 아니다. 그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인데, 중요한 지점은 바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내 성장의 기초가 된다. 받아들이면 보이는 것들이 많다. 그저 욕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초석이 되고 그러함으로 남을 이해하는 것. 그것에서 오는 성장의 폭은 이전엔 겪어보지 못한 자이언트 스텝이다.
저런 사람이 있는데도
회사가 굴러가는 이유
'그들'을 보며 회사가 굴러가는 게 신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그들'이란 점에서, 회사는 어떻게든 굴러간다는 게 이미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회사는 굴러가는 것일까?
정답은 바로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시스템'이란 무엇일까? 컴퓨터로 치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분될 수 있다. '하드웨어'는 건물, 사무실, 책상 그리고 컴퓨터 및 현물 자산 등을 말하고, '소프트웨어'는 사람, 조직, KPI, 브랜드, 시스템, 역량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회사는 이미 잘 짜인 '시스템'인 것이다.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붕괴되거나, 몇몇 사람으로 뭉그러지지 않는다.
우리 몸 또한 잘 짜인 시스템이다.
몸 어느 곳이 다쳐도 이내 우리는 회복하고 일상을 이어간다. 그러나 몸 어느 한 곳의 아픔을 방치하면 심각한 장애가 올 수도 있고, 심하면 목숨까지 위태롭게 된다.
조직도 이와 마찬가지.
당장 시스템이 붕괴되진 않겠지만, 너도 나도 '그들'이 된다면 조직은 병들고 조직의 합인 회사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더, '관용'이란 말을 떠올리면 좋겠다.
남을 그저 봐주는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일 수도 있음을 깨달으며 그들의 상황을 헤아리고 '나는 저러하지 말아야지' 또는 '혹시라도 내가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라는 메타인지의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더불어, 그러한 사람이 많이 보인다고 내가 있는 곳을 하향 평준화해서 보기보단 그저 내 할 일을 자신 있고 감사하게 해내는 게 훨씬 의미가 있다.
그러하므로 '그들' 중 한 명은 줄어들게 될 것이고, 나와 회사는 동반 성장하게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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