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알게 모르게
글을 많이 쓴다.
이메일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네 이메일을 모으고 모으면 수 십, 수 백 권의 책이 탄생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메일은 책 쓰기와 닮았다. 바로 '독자'가 있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니까, 이메일은 일기처럼 혼자 보는 게 아니라, 출판되어 누군가에 읽혀야 하는 책 쓰기 개념에 더 가깝다.
작가는 독자의 해석을 뛰어넘을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하여 A를 이야기해도, 읽는 사람이 B로 읽거나 이해를 하지 못하면 그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이것을 작가가 되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처음엔 그것을 돌이키려 애쓰고 애쓰다 스스로 지쳐버렸는데, 독자의 해석은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알고 나서 마음이 편해지고 내가 원하는 글을 부지런히 써내고 있다.
그러나 이메일은 다르다.
독자의 해석을 뛰어넘거나, 아니면 적어도 내가 원하는 의도가 잘 해석되도록 써야 한다. 이것은 업무이고 프로세스이기 때문이다. 온갖 추상적 메타포를 포함하여 잘 써낸 이메일은 환영받지 못한다. 받는 사람이 내가 원하는 것과, 말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서로 해야 할 것을 명확하게 해석하고 해석해내야 하는 게 이메일의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원하는 의도를 좀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퇴고의 유래'
'퇴(堆)'로 할까 '고(敲)'로 할까?
가도(중국 중당 때의 시인)는 자신이 지은 시의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골똘하다 그만 높은 관리의 길을 가로막았는데, 가도는 곧 끌려가 길을 가로막은 자초지종을 추궁받았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자 행차를 하던 관리가 "여보게, 그건 두드릴 고(敲)가 낫겠네."라고 말했다. 그곳을 지나던 관리가 마침 시인 한유였던 것이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고, 동시에 '미는 것과 두드리는 것'을 고민하던 '퇴고'란 말은 '글을 지을 때 문장을 가다듬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내가 모시던 상사 중에는 이메일 단어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따지던 분이 있었다.
보고서 글자 하나에도 온갖 정성을 쏟았다. 정성이란 말이 긍정적이어서 그렇지, 그 분과 일했던 나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두 문장을 써내는데 10분 이상 걸린다면, 이메일을 작성하거나 보고서를 만드는 그 회의실의 모든 의자엔 가시 방석이 얹히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 힘든 시간보다는, 그분의 의도에 집중했다.
받는 사람이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움직이게 하려는 의도.
지금 생각하니 그분은 '가도'가 환생했던 게 아닌가 싶다.
감정으로 쓰고
이성으로 퇴고한다.
유관부서와 업무 관련하여 크게 싸운 적이 있다.
누가 봐도 상대방이 잘못한 것인데 적반하장으로 나온 것이다. 나는 분을 이기지 못했다. 그 분과 함께 클레임 가득한 장문의 글을 써 내려갔다.
정당한 분노는 나를 명필로 만들었다.
손가락이 떨릴 정도로 흥분한 나는 장문의 이메일을 단숨에 써 내려갔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딴지를 걸 수 없는 수준으로.
'보내기'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이전 한 선배의 충고가 떠올랐다. 감정이 실린 이메일을 썼을 땐, 잠시 사무실을 나가 커피나 음료수를 한잔 하고 오라고. 그리고는 다시 한번 더 읽어 보라고.
잠시 숨을 돌리고 하늘을 향해 한 숨을 내뿜은 나는 내 이메일을 다시 읽어 보았다.
놀랍게도... 여기저기 맞춤법이 틀려 있었고. (그때는 완벽히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앞뒤 문맥이 맞지 않는 문장들이 있던 것은 물론, 욕만 안 했을 뿐이지 상당히 과한 말들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상대방이 잘못한 일이지만, 그 이메일을 읽으면 잘못의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차분히 앉아, 다시금 이메일을 고쳐 써나갔다.
그때 알았다. 정중한 이메일이. 퇴고한 이메일이 더 효과가 있다는 걸.
상대방은 내 메일을 받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물론, 그 이메일에 Top Management가 수신자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 작성한 이메일로 보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그것은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Top Management들은 우리 둘을 다 싸잡아 일 못하는 하수로 여겼을 것이다.
실제로 작가로서 글을 쓸 때도 이 방법을 자주 쓴다.
강의할 때도 강조하는 이 방법.
바로, '감정으로 쓰고 이성으로 퇴고하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이메일 퇴고하는 법
나는 꾸준히 글을 쓰려 노력하고, 지금까지 8권의 책을 출간했지만 20여 년 간 써온 이메일이 그것들보다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또 내 것을 내세우고.
내가 원하는 것과 받아야 하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써내야 하는 이메일.
이메일 퇴고는 그리하여 중요하다.
그렇다면, 가장 효과적인 이메일 퇴고의 방법은 무엇일까?
1. 제목 다시 보기
간혹 답장에, 답장을 거듭하다 보면 이메일 제목에 're: re: re: re: re: re: re: re: '가 붙는 경우가 있다.
제목은 이메일을 열어 보기 전에 사전 Agenda를 확인하는 아주 중요한 문구다. 그런데 불필요한 단어가 이어져 있으면 제목이 무엇인지 모른다. 내 의도를 전하는 데에 방해가 되면 방해가 되지,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경우 나는 're:' 하나만을 남기도 지운 후 '[요청]', '[지급]'과 같이 내가 원하는 말이나 시급성을 담아 제목을 작성한다.
때에 따라서는 또 다른 제목을 앞에 덧 붙이기도 한다. 이메일이 오가면서 Agenda가 바뀌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데도 이전 제목을 그대로 쓴다면 커뮤니케이션의 손실이 발생한다.
2. 수신자 다시 보기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메일 본문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수신자를 살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정작 받아야 할 사람을 빼놓고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이메일에는 'To', 'CC', 'BCC'가 있다.
'To'는 '수신자'를, 'CC'는 참조자를 그리고 'BCC'는 숨은 참조자를 말한다. (참고로 'BCC'는 'Blind Carbon Copy'의 약어다. - 작가 주 -)
이 구분은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수신자는 말 그대로 내 이메일을 읽고 행동하거나 반응을 보여야 하는 사람이다. 참조자는 대개 상사나, 다른 유관 부서를 넣어야 한다. 이메일을 열었을 때, 내가 참조자로 되어 있으면 아무래도 그 시급성을 덜 느끼게 된다.
내가 모시던 상사는 이메일 수신자 리스트도, 직급/ 직책에 따라 하나하나 순서대로 넣었다.
실제로 내게 날아오는 이메일의 수신자 순서를 보면 참 재밌다. 나를 어느 정도 위치로 생각하는지, 수신자와 참조자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지를 보는 눈이 생겼다.
그게, 일하는 역량의 전부를 이야기하지 않지만 어질러진 방보다는 깨끗한 방을 선호하는 게 사람의 본성이란 걸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3. 문단 구분하기
글을 잘 쓰고 못 쓰고 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문단을 잘 나누는 것이다. 문단은 다른 말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맥락을 잘 나누면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이 올라간다.
맥락 나누기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 한눈에 보기에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 주기.
둘째, 맥락을 따라가며 읽는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내가 지금 쓰는 이 글도, 읽는 사람을 고려하여 문단을 나누고 있다.
빽빽하게 앞뒤, 위아래가 구분되지 않는 글보다는 잘 나뉜 문단으로 이루어진 이메일이 훨씬 읽기 좋다.
이메일을 한 번 쓰고 나서, 내 전체 이메일의 overview 해보는 것이 좋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
4. 이미지 크기 조정
간혹 이메일을 읽다가 거대한 이미지가 갑자기 튀어나올 때가 있다.
이 이미지가 튀어나오면, 글을 읽어 내려가다가 그 영역을 벗어나 우측으로 스크롤을 해야 한다.
받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이미지 첨부다.
또는, 이미지가 여러 장 붙는데, 그 크기가 제각각인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는 내가 나에게 메일을 보내보면서 이미지 크기를 조정해 보는 것이 좋다.
이미지 첨부를 할 때, 크기를 얼마로 하면 최적화가 되는 지를 한 번 알아두면 그것은 고정 값이 되므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더불어, 제각각의 이미지를 삽입해야 한다면 아예 파워포인트로 이미지를 모아 적용하는 것이 낫다.
5. 기타 꿀팁들
이것은 작가로서 실제로 사용하는 퇴고의 방법이다.
이것을 이메일에 적용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맞춤법은 기본으로 살핀다.
둘째, 여러 번 읽는다. (바쁘니까 단 두 번이라도.)
셋째, 소리 내어 읽는다. (이메일 전체를 그리할 수 없으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라도)
넷째, 다른 환경에서 읽는다. (PC로 썼다면 모바일로, 모바일로 썼다면 PC로.)
다섯째, 앞서 말한... 감정으로 쓰고 이성으로 퇴고한다.
물론, 작가로서 글을 쓰고 퇴고하는 것과 이메일은 다르다.
그것을 다 적용할 순 없다. 그러나, 간혹 아주 중요한 메일을 써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내 업무 성과의 성패를 좌우하고, 또 그것이 내 업무 역량을 만인에게 알리는 것이라면?
작가가 되어 이 모든 걸 사용해봐야 한다.
내 독자들을 위해서.
더 나아가,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내 상사로 환생한 가도를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배움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뭐 이런 사람이 있어...라고 하면 감정만 상할 뿐이다. 그 사람이 그러는 의도를 파악하여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리면 된다.
퇴고는 글이나 이메일에만 필요한 게 아닌 것이다.
내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어 내고 있는지... 내 삶을 퇴고할 필요가 있다.
글쓰기는 삶쓰기이므로.
퇴고는 삶에도 필요한 것이다.
우선, 이메일 퇴고부터 잘하는 것으로 하고.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