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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04. 2022

삶이라는 투쟁

삶이라는 투쟁은 멈추지 말아야 할 과제다.

자기혐오가 극에 달할 때가 있었다.

아니, ‘있었다’라기 보단 그것은 지금도 무한 반복된다. 이러한 혐오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나는 이것을 ‘부조리’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이것은 ‘나’와 ‘삶’이라는 마찰에서 비롯된다. 나라는 존재는 삶에 녹아들거나 또는 삶이 나라는 존재에 맞닿아 있어야 하는데 사실 이러한 ‘정’의 상황은 그리 많지 않고 언제나 삐걱거린다. 이것이 바로 ‘삶과의 마찰’이자 ‘부조리’다.


지금 당장 USB 하나를 꺼내어 PC 단자에 꼽아 볼까.

한 번에 꽂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한 면으로 시도하여 본다. 꽂히지 않는다. 짜증이 난다. 이 면 아니면, 저 면인데. 이것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할까? 이번엔 뒤집어 시도한다. 이번에도 꽂히지 않는다. 뭐지? 아, 아까 그 면이 맞았던 것이다.


삶은 나에게 수도 없는 선택을 강요한다.

봇물과 같이 밀려오는 그 선택의 순간에, 나는 완벽한 선택을 해낼 수 없다. 제대로 된 선택을 했더라도 그것은 나중에 오히려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고, 반대로 실수와 실패라고 여겼던 것들 것 오히려 득이 되는 경우도 있다. 알 수 없는 법칙과 공식이 팽배한 삶이 나는 그리 달갑지가 않다. 


이러한 수많은 선택을 강요하는 삶으로 인해, 나는 ‘자기혐오’라는 카드를 꺼내 들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삶을 이끌기보단, 삶에 끌려간다는 패배감. 나는 삶에 찌들어 죽겠는데, 누군가는 삶을 향유하는 모습을 보면서 드는 박탈감. 삶을 향해 꺼내 들었던 돌멩이들을, 어느새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선택을 강요한 건 나 자신이 아니라 삶이다.

그 답을 정하는 것도 삶이다. 간혹, 잘 나가다 보면 완벽한 선택과 함께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 착각하는데, 그것은 모두 잠시의 효과일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어려운 선택의 질문을 삶은 던져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란 녀석은 교활하기 짝이 없어, 내가 어떤 선택을 잘해 나가면 내가 분명 잘할 수 없거나, 부족한 무언가를 찾아낸다.


이 문제가 풀리면, 저 문제가 오고.

저 문제를 풀면, 이 문제를 뒤집고.


삶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삶은 투쟁이다.

투쟁은 부조리와의 전쟁이다.

부조리와의 전쟁은 자기혐오를 양산해낸다.


자기혐오라는 감정이 올라올 때, 나는 그래서 이 과정을 거꾸로 읊는다.

나를 미워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스스로에게 돌을 던지는 이유는 뭘까? 이것은 부조리로부터 오고, 부조리가 발생하는 이유는 삶이 내게 강요하는 선택 때문이다. 그 선택의 문제엔 정답이란 없다. 내가 답을 맞히더라도 삶은 교묘히 그것을 꼬아 놓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 나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선택한 모든 것의 결과를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정답은 삶이라는 교활한 메커니즘이 정하는데, 당장의 결과에 대해 급급해하는 건 내 수명을 줄이는 결과만 양산한다.


그래서 나는 쓴다.

무엇이 정답이고,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모르는 것으로 인한 자기혐오 그 자체를 스스로 읊는다. 그러하면 내가 잘못인지, 삶이 강압적인 것인지를 구분해낼 수 있다. 분노의 돌멩이를 어느 누구에게 던져야 할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애먼 나에게 던지던 돌멩이를 삶을 향해 던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삶은 정-반-합의 변증법을 따른다.

삶에 던지던 돌멩이를 나에게 던졌다가. 그것을 다시 삶에 던졌다가. 삶에 호되게 당한 뒤, 삶과 두 손잡고 걷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뒤통수가 얼얼한 배신을 삶으로부터 당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기록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녹취를 할 수 없으니 써야 한다. 삶이라는 투쟁에서 필요한 건, 삶과 나의 정-반-합이라는 무한한 반복에 대해 써 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삶이라는 투쟁을 이어 나간다.

그러나 투쟁의 대상인 삶을 혐오할지 안 할지는 그 선택을 보류하기로 한다. 


삶이 던지는 모든 선택의 문제에 대해, 무언가를 고르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의 여유를 갖기로 했기 때문이다.

선택지 앞에 발을 동동 구르는 선택의 압박을 느꼈던 건 어쩌면 스스로의 강압이었는지도 모르니까.


삶이라는 투쟁은 멈추지 말아야 할 과제다.

그렇다면 나는 가급적, 그 투쟁을 웃으며 해내고 싶다.


사방팔방 던져 대던 그 돌멩이로, 나는 나만의 성을 쌓으려 한다.

언젠가 그 성 안에서 내가 삶을 농락하는 근사한 글들을 써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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