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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13. 2022

나이 들어감의 미학

질문을 멈추지 않을 때 내 삶은 비로소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다.

우리네 인생은 참 애매모호하다.


생각해볼까.


오늘은 나의 가장 젊은 날일까, 아니면 늙은 날일까?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죽어 가고 있는 것일까?

살기 위해서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어느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관점'이라는 프레임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그러하면 삶은 '긍정'과 '부정'을 모두 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부정'을 부정하고, '긍정'만 긍정하려 했던 건 다름 아닌 내 '프레임'이었다. 그러하니 삶은 더 어두웠고, 더 치열했다. 깨끗해지고자 순백색만을 추구하면, 그곳에 묻게 되는 작은 얼룩이 더 커져 보이는 것처럼 긍정적인 것만을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더 어두워지는 것은 나의 오늘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는 무언가를 좀 알겠다.

그러니까, 삶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느 한쪽으로 쏠려서는 안 된다. 어느 한쪽으로 쏠릴 때, 우리네 인생은 경고장을 날린다. 그 경고장을 받아 들고 멍하니 서 있으면, 그제야 내가 어느 지점에 와있고 무언가에 쏠려 있는지를 인지하게 된다. 그러니, 이제는 쌓아둔 나이로 그 불균형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다른 말로 균형을 맞춰간다고 표현해도 좋겠다.


나는 이것이 '나이 들어감의 미학'이라 생각한다.

'미학'은 '자연, 인생이나 예술 작품이 가진 아름다움의 본질이나 형태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단어 풀이에서 내 마음을 훔친 건, 바로 '본질'이라는 단어다.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니. 어쩌면 나는 '미학'이라는 그 말 자체에 푹 빠져버린 것 같다.


'나이'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숫자일까, 등급일까 아니면 그 어떤 또 다른 의미일까. 나이는 먹는 것일까 쌓는 것일까. 먹는 것이라면 어디로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쌓은 것이라면 그저 '나일리지'가 되지는 않도록 유의해야 하지 않을까. 나이가 많아진다는 건 참을 두려운 일이다.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갈 자신이 그리 많지 않고, 그에 따라 내 몸 여기저기는 쇠약해져 갈 테니 말이다.


한 마디로,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란 이야기다.

그러함에도 이것을 '나이 들어감의 미학'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서다. 지금까지는 답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질문하는 법을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그 원인이 바로 '나이'란 생각에서 나는 '미학'이란 말을 쓰고 싶은 것이다.


본질은 탐구하는 것이고, 답이 있다기보단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계속하여 알아가는 것이다.

본질은 쉬이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쉽게 정의되었다면 그것은 본질이 아니며, 그것을 탐구할 가치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나이라는 숫자가 두 자릿수가 아닌 세 자릿수를 넘어가도 나는 그 본질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아니, 알아차리지 못하여야 한다.


그래서 계속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하며, 그 질문을 멈추지 않을 때 내 삶은 비로소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나이 들어감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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