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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08. 2022

오는 말과 가야 하는 말

'오는 말'에 휘둘리던 예전의 나는 없다.

12시가 조금 넘은 밤.

4km 정도 떨어진 호텔로 가기 위해 사거리에 섰다. 택시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저마다의 택시는 '예약'이라는 글을 깜빡이며 분주했다. 내 손에 반응할 택시는 아예 없었다.


'그러게, 요즘 세상에 누가 손을 들어 택시를 잡나.'


오랜만의 한국 출장이라, 내 손에는 한국이 아닌 해외 폰이 들려있었다.

급하게 택시 호출 앱을 깔았다. 목적지를 넣고 택시가 잡히기를 기다렸다. 내가 있는 곳을 알려 주며 지도는 확대와 축소를 반복했다. 그 사이 '예약'이란 글자를 깜빡이며 수많은 택시들이 지나갔다.


나를 예약해 줄 택시는 어디에 있을까.

마침내 어느 한 택시가 2분 안에 내게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아 요즘은 한국에서 택시 잡기가 쉽지 않네요.'


한 밤에 택시가 잡히지 않아 막막했던 마음을 기사님에게 토로하며 밝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그 기사님의 안색과 분위기는 어쩐지 그것을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가까우니까 안 잡히는 거예요. 가까우니까. 플랫폼 택시들은 저희들끼리 장거리 손님을 매칭 시켜 주고, 나에게는 쓰레기만 주고..."


나는 두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입 밖으로 "지금 저보고 쓰레기라고 하신 건가요?"란 말이 튀어나왔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택시 기사님도 아차 싶었는지 이런저런 한탄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말들이 들리지 않았다.

그저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란 속담이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오는 말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를 생각해야 하는 순간.


'제가 쓰레기면, 이 차는 쓰레기차인가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나요?'란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나는 오는 말에 대해 '가는 말'이 아닌, '가야 하는 말'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기사님은 왜 그런 말을 서슴없이 했을까?

스스로 이상한 말이란 걸 알았음에도, 나중에 '아차'할 이야기를 왜?


잠시 쉬어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다.

얼마나 힘드시면 그러셨을까. 플랫폼의 수혜자도 있지만, 그 수혜를 받지 못하는 피해자도 분명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지금 이 택시 기사님이 바로 그 피해자가 아닐까. 이너서클에 들어가지 못한 그 설움과, 한 푼이라도 더 효과적으로 벌어야 하는 그 조급함을 나는 헤아리기로 했다.


호텔에 도착해 문을 여는 그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인사를 할까 말까. 문을 세게 닫을까 말까. 뭐라고 한 마디를 하고 내릴까 말까.


아니지, 그 마음을 헤아리기로 했으니, '가는 말'이 아닌 '가야 하는 말'을 택해야지.


"기사님, 감사합니다. 남은 시간 좋은 콜이 많이 잡히길 바랍니다."


멋쩍은 기사님으로부터 나는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


편해지는 마음은 내 것이었다.

택시 문을 살짝 닫을 수도 있었다.

과도하고 몸에 해로운 호르몬을 분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살다 보면, 오는 말에 적잖이 당황할 때가 있다.

지금까지 나는 그것에 그대로 맞받아 치거나, 감정을 가득 담아 되받아 말하곤 했는데 돌아보면 그로 인해 힘든 건 내 마음이었다.


오는 말은 대게 정제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있는 그대로 다 받아 내고, 그것에 반응하면 우리네 몸과 마음은 성할 날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야 하는 말'을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상대의 입장과 상황을 헤아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헤아린 그 마음은 고스란히 내게 돌아온다.


그저 '가는 말'이 아닌, '가야 하는 말'에 좀 더 집중하려는 이유다.


'오는 말'에 휘둘리던 예전의 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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