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안 써질 땐 '도장 깨기식' 글쓰기로
Feat. '제목 카피라이팅'과 '제목 아카이빙'
글쓰기는 참 묘한 구석이 있다.
누가 내어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숙제라 여기는 이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오늘도, 하루에 글 하나를 써야 한다는 강박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무척 많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러할지도.
나는 강박적 글쓰기를 하는 것에 대해 반은 찬성이고 반은 반대다.
찬성하는 이유는 꾸준한 글쓰기에 대한 바람직한 욕망이기에 그러하고, 반대하는 이유는 오히려 그 강박이 글쓰기를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한 강박은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인 동시에, 그것을 가로막는 장벽인 것이다.
글쓰기로 숨을 쉬자고 마음먹은 나 또한 글쓰기 앞에 주춤할 때가 있다.
이미 소재에 대한 한계는 '페르소나 글쓰기'로 극복했다. 이제는 일상을 달리 볼 줄도 알고, 평범한 것을 평범하지 않게 보는 비범함도 생겼다. (페르소나 글쓰기 참고 글)
더불어, '제목 카피라이팅'과 '제목 아카이빙'으로 그 소재는 한층 더 펄떡인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의 제목을 멋있게 지어 놓고(제목 카피라이팅), 그것을 차곡차곡 모아 놓는 것(제목 아카이빙). 이것만 제대로 해도 글감이나 소재가 끊길 일은 없다. 오히려, 모아 놓은 글감을 쓰지 못해 안달 날 일이 더 많다. 그래서 내 작가의 서랍엔, 아직도 글로 표현하지 못한 제목이 수 백개가 쌓여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것을 가늠하는 건, 본격적으로 그 제목을 들고 글을 쓸 때다. 영감을 얻어 아카이빙해 둔 제목들은 어서 빨리 자기를 완성 지으라고 나를 압박한다. 그 압박 속에 나는 행복한 고민을 한다. 그럼에도 글이 한 번에 제대로 써지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글쓰기는 참으로 어렵다. 작가는 글쓰기의 고통을 감내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웃음으로 시작해 울음으로 끝나는 날들이 허다하다.
즐비한 제목을 두고도 나는 어떤 걸 쓸까 고민하다가, 그 강박에 못 이겨 아무것도 써내지 못한다.
이때 나는 '도장 깨기식' 글쓰기를 시도한다. 말 그대로, 어느 제목 하나를 고르고 고르는 게 아니라 순서대로 위에서 아래에 적혀 있는 제목을 차례로 써 나가는 것이다. 이 제목을 고를까, 저 제목을 고를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저, 내가 적어 놓은 순서대로. 그때의 감정과 영감을 떠올리는 것이다.
대게 제목이 번뜩 떠올랐을 때의 감정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제목으로 남겨 둔 것인데, 온전히 남아 있지 않은 그 영감이 글쓰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그 제목을 빤히 돌이키면 그날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게 된다.
후진은 없다.
제목을 붙들고, 영감이 떠오르고 글이 마무리될 때까지 물러서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글이 써지지 않을 땐 '도장 깨기식'으로 글을 묵직하게 써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하려면, 적어 놓고 모아 놓은 제목이 있어야 한다. 적어 놓기 위해선 영감을 얻어야 하고, 영감을 얻으려면 일상을 특별하게 바라봐야 한다. 그저 뻔하고 평범한 것들에서 의미를 찾아내어, 비로소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
이것은 글쓰기의 선순환이자 선물이다.
글쓰기의 강박은 참으로 좋은 선물이다. 그것에 괴로워하느냐, 아니면 새로운 에너지로 삼아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볼 것이냐.
고민할 필요가 별로 없다.
지금 당장, 도장 깨기식으로 적어 놓은 영감들을 하나하나 글로 내어 놓으면 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도장을 깨다 보면 어느새 맛있는 밥상이 차려져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