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하는 건 결국 나 자신
눈이 감긴다.
몸이 늘어진다.
아직 열심히 일어나 분주해야 할 시간.
그러나 공간의 이동은 시간의 차이를 만들어 내며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공간의 이동은 내 선택이다.
그러나 시간의 차이는 내 영역 밖이다.
이처럼 삶에서의 선택은
반대급부를 내포한다.
거기는 몇 시고
여기는 몇 시인가.
나는 거기에 있는가
여기에 있는가.
혼란을 틈타
잠이라는 녀석이 찾아오고
세상은 몇 시인지
나는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내가 있던 그곳에
나란 존재는 없고
그저 시간의 차이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하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일 뿐.
세상의 법칙은 야속하지만
나는 끝내 시간의 차이에 적응하고 만다.
그리하여 간사함은
시차를 극복하게 하는
나약한 존재의 생존 방식이다.
[종합 정보]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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