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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02. 2022

글쓰기로 힘을 빼고, 글쓰기로 힘을 낸다.

삶의 힘을 조절하는 '메타인지'의 시작점

힘 빼기의 기술


어느 운동을 하더라도 공통적으로 듣는 조언이 있다.


"힘을 빼세요."


이제 막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이 말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운동은 근육의 힘을 빌어 무언가를 쳐내거나 내달려야 하는 것인데 힘을 빼라니. 힘이 근본인 활동에서 힘을 빼라는 게 대체 무슨 말일까.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이 말은 정말로 힘을 빼고 무기력하게 있는 게 아니라 더 큰 임팩트와 더 큰 힘을 주기 위해 힘을 조절하라는 것이다. 동시에, 경직되어 있는 몸의 긴장을 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을 치거나 차기 위해, 어떤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긴장한다.

뛰고 달리는 와중에 목표물에만 혈안이 되면 주위가 보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경직은 본래의 기량마저 발휘할 수 없도록 만든다. 통나무처럼 굳어버린 몸이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힘 빼기의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나는 이것이 바로 '메타인지'의 시작점이라 생각한다.


'아, 내가 이렇게 힘을 주고 있었구나.'
'이런, 내 몸이 이렇게 딱딱하게 굳어 있었구나.'


이것을 알아차리는 그 순간이 바로 힘 빼기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삶이라는 스포츠
그러니 더 필요한 힘 빼기의 기술


어느 스포츠 의류 회사의 광고가 기억난다.

'사는 게 다 스포츠야!'


이 광고는 삶의 역동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반대로 매일을 긴장하고 경직되어 살고 있는 우리네 삶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매 순간을 우리는 힘을 주어 살고 있는 것이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우리에게 주어진 목표를 달성해내기 위해 몸과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는 게 스포츠라면.

잘 살기 위해서 우리는 힘을 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정말로 힘이 필요할 때 그것을 극대화할 수 있고, 흐늘흐늘함 속에서 강한 임팩트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게 그리 말처럼 쉽진 않다.

한시라도 힘을 뺄 수 없는, 삶이 주는 무게와 다급함은 내 영역 밖의 것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불안과 두려움은 나쁜 게 아니다. 나를 지키기 위한 경계의 마음이다.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있으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다.

'기술'이 필요한 이유. 강약약중간약약을 발휘할 수 있는 지혜.


글쓰기로 힘을 빼고,
글쓰기로 힘을 낸다.


힘을 빼려면 내가 얼마나, 어느 곳에 힘을 주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앞서 말한 '메타인지'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내 경직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글쓰기'다.

내 안의 것을 끄집어내야 한다. 그래야 '의식'을 '의식'할 수 있게 된다. 나도 몰랐던 부분을 발견할 수 있고,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의 힌트를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게 된다.


글쓰기는 참으로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인 활동이다.

몸은 고요하지만 마음의 폭풍과 봇물을 감당하기 힘들 때가 다. 그 고요함으로 몸과 마음의 힘을 빼야 한다. 가만히 앉아 내 영혼의 근육을 돌봐야 하고, 어디가 경직되어 있는지를 가늠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다른 한 곳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에너지를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알게 된다. 삶의 임팩트가 명확해지고, 힘을 주고 빼어야 할 때를 조절하는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나는 다혈질이고 성격이 매우 급하다.

매사에 힘을 주고 있다는 뜻이고, 잘못된 힘쓰기로 낭패를 본 적이 많기도 하다. 그러나 글쓰기를 시작한 후, 나를 돌아보았고 내 화와 분노의 근원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자극'과 '반응'사이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시간을 늘리는 것이 관건이고, 이것이 지금 말하고 있는 힘을 빼는 기술이자 적재적소에 힘을 줄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구간이다.


나는 '자극'과 '반응'사이에 '글쓰기'가 있다고 확신한다.

'글쓰기'로 삶의 힘을 조절한다. 힘을 빼야 할 때와 힘을 주어야 할 때를 점점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힘을 빼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운동을 하다 보면, 다시 몸은 경직되기 일쑤다.

삶도 마찬가지. 평온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이라는 스포츠에 임하다 보면 더 잘하기 위한 마음이 온몸과 마음을 통나무처럼 만들어 버린다.


몰려오는 자극에 생각 없이 반응하는 이유다.

모든 세상이, 모든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존재가 된다. 사력을 다해 그것에 맞서려는 마음이 오늘도 우리 몸에 힘을 잔뜩 주게 하는 것이다.


힘을 뺄 줄 알아야 한다.

힘을 주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지금으로서 스스로를 메타인지하며 자극과 반응 사이의 시간을 늘려 주는 건 '글쓰기'만 한 게 없다는 생각이다.


글쓰기를 통해 힘 조절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효과는 삶의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있으니.


나는 쓰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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