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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13. 2022

사랑은 붕괴되는 거야 [영화 헤어질 결심 단상]

사랑할 결심과 헤어질 결심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자는 산을 좋아한다.


산으로 시작해 바다로 끝난다.

영화 기생충의 오르막과 내리막처럼, '헤어질 결심'은 '산'과 '바다'를 미장센으로 삼는다.


그러니까 그 둘은 상반되어 있다.

산을 좋아하든, 바다를 좋아하든. 그 둘을 동시에 즐길 순 없다. 한쪽으로 간다는 건, 어느 다른 하나와의 헤어짐이다. 


해준은 형사고, 서래는 용의자다.

그 둘도 상반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둘은 이미 헤어져 있는 것이다. 아니, 헤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산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서래의 말에 해준도 그렇다고 말한다.


'상반'이라는 말이 옅어지는 순간이다.


짙어지는 의심
깊어지는 관심
그리고 사랑할 결심


형사의 본분은 '의심'이다.

그러나 '의심'은 일종의 '관심'이다. '관심'은 이내 그 어떤 '결심'을 낳는다.


의심
관심
결심


공통점은 '심(心)'이다.

그것이 어떻게 왜곡되고 변질되느냐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철두철미한 해준의 의심은 관심이 되고, 그 관심은 '사랑할 결심'으로 바뀐다.


사랑은 붕괴되는 거야
그리고 헤어질 결심


서래는 해준에게 말한다.

서래: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이에, 나도 해준과 함께 고개를 갸우뚱한다.

해준: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지?


영화 내내, 해준은 서래에게 '사랑'이란 말을 꺼낸 적이 없다.

그러나, 상대방의 해석을 우리는 뛰어넘을 수 없다.


해준이 서래에게 "나는 완전 붕괴되었어요"란 말을 하고 헤어질 결심을 했을 때.

서래는 '붕괴'라는 말을 휴대폰으로 검색한다.


그녀에게 해준의 '붕괴'는 '사랑'이었던 것이다.

사랑이란 그렇다. 형사의 꽉 묶은 신발 끈을 풀리게 한다. 본분마저 잊게 하는 무서운 힘. 지금의 내가 붕괴되어야 시작될 수 있는 그것.


그게 사랑이다.


그렇지.
사랑은 언제나 미결이지.


세상엔 완전한 사랑도, 완벽한 사랑도 없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차가워지는 부부. 형사와 용의자이지만 뜨거워지는 서로.


무엇이 사랑이고, 어떤 게 진심일까.

품위 있는 해준과 꼿꼿한 서래.


그 둘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난 해준 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 봐요. 벽에 내 사진 붙여 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상대방의 가슴에 나를 각인시키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그중에 서래가 택한 방법은 현명하면서도 독하다.


원래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것은 미결로 귀결된다.




영화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나온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장편 영화다.

'수사 멜로극'이란 다소 낯선 장르이지만, 그렇다고 어렵진 않다.


어려운 건 극 중 인물의 마음이다.

그들의 '결심'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사랑'인지, '이별'인지.

모든 인물은 그들만의 결심을 품고 있는데, 그것이 보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하긴,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든 결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때론, 나도 모르게 생겨나는 결심도 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결심을 하고 있는 걸까.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마음을 돌아보자는 산 같은 결심이 바닷물처럼 들이찼다.


P.S


서래는 해준을 '붕괴'이전으로 돌려보내려 하지만, 그게 더 큰 '붕괴'를 가져올 거란 걸 몰랐을까?

아니, 그녀는 분명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독하고 이기적인 복수. 어쩌면 이 영화의 장르는 헤어질 결심을 한 사람에게 보내는 '복수 멜로극'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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