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Apr 11. 2016

'부다'가 '페스트'를 만났을 때 '부다페스트'

미드나잇 인 부다페스트

늦은 밤이었다.


도착이 11 시인 비행기여서 불만이 있을 법도 했었다. 바로 다음 날 오전 8시부터 시작될 회의는 그 불만의 원인이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무언가 기대가 되었던 건 도착한 이 도시의 야경이 그리 유명하다는, 한 번은 봐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명한 도시는 각각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고,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곧 그 아우라를 상징한다.


"부다와 페스트, 부다페스트"


유럽에서 주재 생활을 하고 있기에, 유럽으로의 출장은 일상다반사다. 그러기에 각각의 도시를 방문할 수 있는 건 어쩌면 내게 큰 축복인지 모른다. 각각의 도시의 매력을 발견하는 일은, 지친 출장길에 위로와도 같은 비타민이면서.


부다와 페스트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은 우리에게 '붓다(부처)'와 '페스트(흑사병)'을 자연스럽게 연상케 한다. 더불어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와 상당히 헛갈리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부처나 흑사병은 '부다페스트'의 이름과 전혀 상관이 없고, 도나우강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위치한 '부다'와 '페스트'란 도시가 합쳐져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가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부다'와 '페스트'는 수도를 주거니 받거니 해왔다. 결국 '부다페스트'가 된 것은 참으로 현명한 역사적 절충안이겠지.


함께 출장 온 벨기에 거래선 중 한 사람은, 처음 부다페스트로의 출장 제안을 받았을 때 이게 어느 나라인지 한참을 생각했다고 한다. 나에게만 낯선 곳은 아니었나 보다.


"부다페스트 마포대교 한 바퀴"


다음 날 오전 이른 회의의 압박이 있긴 하지만, 자정이 다 된 시간임에도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봐야 한다는 일념 하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밖을 향해본다. 호텔을 나서 걷는 거리는 한적하다. 자정이란 시간은 도시를 고요하게 만들었다. 지나가던 Bar에서는 여전히 음악이 흘러나오고 비틀 거리는 사람들이 그 안에 보였지만, 거리는 홀로 남아 있었다. 마치, '난 외로우니 나를 밟고 함께 걷자'고 하는 듯했다.


뵈뢰슈머르치 광장의 오픈마켓


흔쾌히 그 한적한 길을 밟아 낮에는 활발했을 어느 작은 시장을 지나친다. 나무에 달려 있는 연등이 이채로웠다. 한 낮에는 얼마나 활기찼을까. 한 낮의 활기참이 오버랩되면서 그 안에 있는 듯했다. 밤이라도 느껴지는 그 기운. 그 느낌. 그곳, 그 시간.


소년 맞을 것이다 아마


잠시만 더 걸어 드디어 도나우 강가에 도착한다. 피터팬을 연상케 하는 한 소년이 강을 등지고 앉아있다. 이 소년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왔고, 어떤 사람들을 봐왔으며, 무슨 연유로 이렇게 앉아 있을까를 잠깐 생각해본다. 물어봤자 대답하지 않을 것이므로. 사뭇, 그곳에 앉아 있는 모습이 진지하다. 지나가던 몇몇 관광객도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본다. 저렇게 요지부동 앉아서 여생을 보내고, 다가오는 관광객과 사진을 같이 찍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 받은 녀석.



강을 따라 저 멀리 보이는 다리를 향한다. '세체니'다리라 쓰고 '마포대교'로 읽고 싶다. 모양새는 다르지만, 왠지 여의도와 마포를 연결하는 마포대교가 떠올랐다. 왠지는 모른다. 어쩌면 마포대교를 걷던 그때의 느낌이 지금 이 느낌과 비슷했는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떠올리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살랑이는 바람과 강가에 비친 지상의 실루엣이 비슷했을 수도.


다리도 물론 한산했다. '부다'와 '페스트'를 잇는 대표 격의 이 세체니 다리는 아름답다기보다는 견고했다. 멀리서 바라본 첫인상은 조명과 함께 화려해 보였지만, 그 속내는 견고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언덕'이 많은 '부다'쪽은 꼭 남산의 언덕과 유사했다. 마포대교를 건너고 지나, 남산에 도착한 느낌이랄까. 유독 한국의 그것들이 생각나는 것이 정말 비슷해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향수병이 스멀거리나 보다. 맘 속에서. 기억 속에서.





요소요소마다 있는 동상을 지나 다시 호텔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저 친구들은 왜 동상이 되었을까? 어떤 사연과 사유가 있을까. 그러한 동상들 또한 부다페스트의 색채를 좀 더 선명하게 하는 듯했다.



'미드나잇 인 부다페스트' 마실 한 바퀴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각자의 매력을 뽐내려는 수많은 조명과 건축물의 조화가 결코 자만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야경은 보기 좋았다. 아름다웠고 평온했다.


그 평온함을 안고 결국 호텔로 돌아가 내일 회의 준비를 하여야 했지만, 한적한 부다페스트 거리와의 데이트는 후회와는 거리가 먼, 오히려 내일 오전 회의의 압박감에 보지 않았더라면 후회했을 뻔 한 시간이었다.


굿나잇, 그리고 땡스 부다페스트!




* 글쓰기의 본질을 전하는 사람들, 팀라이트가 브런치 글쓰기 강의와 공저출판 프로젝트를 런칭 했습니다. 많은 관심과 함께 주변의 글쓰기가 필요하신 분들께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팀라이트 클래스 안내] 브런치 글쓰기 x 공저 출판


* 와디즈 글쓰기 앵콜 펀딩 정보

[와디즈 앵콜 펀딩] 스테르담과 글쓰고 책내고 작가되기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장벽은 없어. 이념은 남았어. Part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