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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15. 2017

장벽은 없어. 이념은 남았어. Part 2.

전쟁과 학살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아 놓은 이 도시


- 여정 -


암스테르담 To 베를린 (664km, 2박)

베를린 To 암스테르담


베를린 돔에서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발등 위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노란색 버스를 보고는 바로 일어난다. 베를린 돔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 유명한 브란덴부르크 문이 위치해 있다. 출장을 와서도 그저 지나가기만 하던 곳, 그리고 거대한 문 위에 있는 동상이 매우 호전적인 모습이어서 기억에 남아 있었다. 물론, 수십 번을 보기만 하고 그저 지나쳐갔던 곳. 버스에 올라타 아이들은 다시 이어폰을 꼽는다.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턱을 뺐다 넣었다, 저희들끼리 박자를 맞추는 모습에 와이프와 나는 뒤에서 웃었다. 

흐르는 음악에 머리와 턱을 까딱까딱 하는 재미있는 아이들.


브란덴 부르크 문을 오른쪽 몇십 미터에 앞두고, 왼편으로 먼저 보이는 건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 (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였다. 이곳도 그저 지나쳐만 가던 곳으로, 브란덴 부르크 문을 둘러보고 반드시 가보기로 했다. 

브란덴부르크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아테네의 신전문을 본떠 만들어서, 그리스 신전 분위기가 나는 브란덴부르크 문은 분단 독일 시절의 상징이기도 했다. 우리로 치면 38선과 같은 곳으로 개선문이 동서독 분단선의 역할을 한 셈이다. 즉, 개선의 환희와 분단의 경계를 함께한 기구한 운명의 구조물. 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되어 1957년부터 1958년까지 복원된 운명도 기구함을 더한다. 문위의 4두 마차는 '승리의 콰드리가 전차 조각상'으로 한 때 나폴레옹에게 빼앗겨 파리에 있다가 1841년 다시 돌아왔다. 19세기 이후 전쟁에 승리한 프로이센군 과 독일군이 개선할 때 반드시 통과하는 장소로 개선문의 역할을 다했고, 2009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는 마라톤과 경보 경기의 출발점과 결승점이 되기도 했다.

나폴레옹이 베를린을 입성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 브란덴부르크 문이 분명하게 보인다.
브란덴부르크 문 앞의 전차. 4마리 말 중 3마리의 머리가 손상되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의 첫 개선식의 주인공이 나폴레옹이라는 치욕과, 4두 마차를 프랑스에 빼앗긴 수모. 다시 프로이센군이 역으로 파리를 점령해 그 위상을 찾았다가 세계 대전 때 폐허가 되었던 곳. 재건이 되기도 전에 동독과 서독을 갈라놓은 역할을 하기까지. 문 하나에 얽힌 기구한 사연과 위상 치고는 사실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다만, 아직도 앞으로 튀어나갈 것만 같은 4두 마차와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의 위엄은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두 발을 밟은 그곳에서 벌어진 수많은 이약들을 곱씹으며 아무 일도 없어 보이는 지금의 모습에 무료함을 느끼기도 했다.

문 위의 4두 마차는 바로 튀어나갈 것만 같다.


기대보다 무료했던 것을 달래주려 했을까. 갑자기 경찰 오토바이와 순찰차들이 브란덴부르크 문 앞의 도로를 막기 시작한다. 요란한 사이렌으로 차를 통제하고는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줄을 이어 갔다. 대통령이라도 지나갈 줄 알았던 요란한 의전은 오토바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호한 것이었다. 그 행렬이 생각보다 길어서 약 30분 동안 바로 옆 유대인 추모비로 가는 도로 하나를 건너지 못할 정도였다.



신성하고 음침하고 연민을 일으키는 곳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는 지나갈 땐 그저 직사각형 모양의 시멘트 구조물이 여럿 있는 것으로만 보인다. 1만 9073㎡의 부지에 콘크리트 비석 2,711개가 겪자 모양으로 늘어서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2005년 5월 12일에 지어졌다. 격자무늬 콘크리트 사이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그 깊이가 깊어지고, 반면 콘크리트는 높아진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을 연상케도 한다. 마치 미로와 같은 이곳의 내부는 그래서 음침하다. 위압감이 몰려온다. 콘크리트가 사방에서 내뿜는 냉기는 실제와 분위기의 산물이다. 사방을 둘러보아 느껴지는 음산함은 거룩하고 신성하며 또 연민을 일으킨다. 어쩌면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비석 같기도 한 그곳에서 '인생은 아름다워' 속 귀도 오레피체(로베르토 베니니)의 아들 조슈아를 향한 마지막 윙크가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그저 어느 한 놀이터로 생각할 것이 뻔했다. 어쩌면 그것은 귀도 오레피체가 원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아이들도, 나중이 되어서야 이곳의 의미를 절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겉에서 보면 낮은 콘크리트 비석들로 보인다.
드높게 뻗은 추모비들이 내뿜는 차가움은 음산하지만 연민이 느껴진다.


브란덴부르크 문과 유대인 학살 추모비를 뒤로하고 베를린 중심지로 향했다. KaDeWe라는 유명 백화점이 있고 쇼핑 거리가 길게 늘어진 곳. 그곳엔 일명 '깨진 교회'라는 곳이 있다. 그곳도 지나가다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남겨둔 곳이라는 말만 여러 번 듣고 정작 들어가 보진 못한 곳이었다.

지나가는 길에 전승 기념탑이 보였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덴마크의 연합군과 맞서 싸워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꼭대기에는 역시나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자리 잡고 있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는 그 꼭대기에 다니엘(하늘의 천사)이 세상을 내려다본 곳으로 유명하다. 

285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전망도 볼 수 있다.
지나가다 바라 본 가로등. 할로겐 램프가 아닌 LED로 바뀌어 있다.


베를린 중심가에 도착해 와이프에게 유명 백화점인 Ka De We에서 쇼핑을 마음껏 하라고 한 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레고샵으로 향했다. 베를린 레고샵은 아이들을 풀어놓고 있기에 참 좋다. 직접 조립을 하거나 체험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는 나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잠시 책을 읽었다. 많이 걸은 탓에 쪼그리고 앉으니 잠시 다리의 근육이 뻐근함에서 시원함으로 바뀌는 느낌이었다.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우리 가족은 '허기'를 가지고 한데 모였다. 백화점에서 깨진 교회로 가는 중간에 음식 골목이 있음을 알고 있던 터라, 그곳에서 역시나 학센을 주문했다. 독일에 오면 바삭한 껍데기와 야들야들한 속의 맛을 좋아하는 터라 항상 먹곤 한다. 아쉽게도 네덜란드에서는 학센 자체를 파는 곳이 없다. 어딘가에 있어도 이 맛을 보장하지 못하니 선뜻 도전할 생각도 들지 않을 것 같다. 다만, 국경도 접해 있고 다른 나라 음식에 그리 관대한 네덜란드에서 왜 학센을 쉽게 만나볼 수 없는지는 의아한 부분이기도 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야들야들하다.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는 쉽게 '독일 족발'이라고 한다.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깨진 교회'


'깨진 교회'는 '카이저 빌헬름 교회'의 정식 명칭이 아니다. 그저 한인들이나, 유학생 그리고 한국 관광객들에게 암암리에 이야기되는 이름이다. 다만, 그 이름을 들었을 땐 그 이름이 매우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파괴된 지붕은 곧 전쟁의 상처를 말해주고, 우리는 그것을 '고스란히' 간직했다고 표현한다. 브란덴부르크 문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베를린의 명물이다. 1859년 기욤 2세가 할아버지를 위해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곳으로, 1943년 연합군의 집중포화로 파괴되었다. 전쟁의 참상을 알리자는 취지로 폭격된 모습 그대로 자리 잡고 있다. 대신 교회 옆에 팔각형의 예배당과 종탑이 새로 건립되었다. 

드디어 내부를 들어가 보게 되니 기분이 설렜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천장의 화려한 벽화들은 곳곳에서 빛을 발했다. 이곳에서도 초를 발견한 아이들은 엄마를 졸라 각자 1유로를 받아 들고는 소원을 열심히 빌었다. 녀석들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몇 개의 장난감을 더 사야 할 것이다.

일명 깨진 교회. 왼쪽엔 신 예배당이, 오른쪽엔 신 종탑이 있다.
내부는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소원을 비는 아이들.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몇 개 더 사게 될 것이다.
천장의 화려함은 전쟁의 참상을 잠시 잊게 한다.


첫째 날의 여정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베를린 대부분의 것들을 둘러본 후 남은 건 이제 베를린 장벽이었다. 호텔로 돌아온 후 나는 아직 아쉬움이 남아 혼자 잠시 산책을 했다. 그저 망가진채로 우뚝 서 있던 호텔 근처의 유적이 시간의 먹먹함과 부질없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은 언제나 마음 짠하다.

호텔 근처의 유적


자유가 그려진 장벽의 현재,
그리고 그 끝에서 만나는 의외의 휴식


셋째 날의 여정은 간단했다. 네덜란드로 약 6시간을 운전해서 가야 하니 베를린 장벽이 길게 늘어진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슈프레 강이 보이는 곳에 1.3km 길이의 장벽이 미술관으로 둔갑한 지 꽤 오래다.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그림이 침식, 낙서, 반달리즘 등으로 심하게 훼손되어 일부 펜스가 둘러져 있기도 하다. 베를린 장벽의 동쪽에 그려진 그림은 약 105개로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야외 공개 갤러리로 알려져 있다. 아이들은 벽에 기대어 포즈를 취하느라 바쁘다. 기던 길 중간에 말머리 가면을 쓴 한 남자가 기타를 메고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의 옷은 반라상태. 자유를 갈구하는 존재를 상징이라도 하는 듯 경쾌한 몸짓과 목소리를 발산했다. 사람들은 주위에 몰려들고 그 순간을 즐겼다. 뒤로는 독일 베를린을 연상케 하는 흰색과 검은색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바닥에 그려진 안내표기
항상 조심
놓여진 펜스 때문인지, 사람들의 얼굴에서 자유를 위한 갈망을 읽을 수가 있다.
장벽의 너머를 갈구했던 사람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벽의 두께는 생각보다 두껍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념들의 두께가 상당할 뿐.
벽에 단순하게 그려진 콘센트에 자연스레 눈이 가는 건 현대인의 병일지도.
보기 불편한 그림도 있다. 앞에서는 일본에서 온 노부부가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자유를 갈망하는 듯한 반라의 노래하는 사나이. 뉴욕의 기타치는 카우보이가 생각난다.
장벽 뒤로는 슈프레 강이 흐른다.
장벽 사이에 뚫려진 슈프레강으로 가는 길.
여느 다른 강가와 다름 없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와 '에리히 호네커'의 키스는 강렬하다. 


'형제의 키스'라 불리는 이 작품의 부제는 '주여, 이 치명적인 사랑을 이겨내고 살아남게 도와주소서'다. 동독 공산당의 서기장 에리히 호테커, 그리고 소련 공산당의 서기장인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인사하는 모습을 모티브로 그린 그림으로 베를린 장벽의 그림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소련을 향한 동독의 맹목적인 추종을 풍자하는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들의 진한 키스. 키스의 깊이만큼 풍자의 힘은 세진다.
1991년 원본, 2005년 훼손, 2009년 복원되었다.
장벽의 두께는 그리 두껍지 않다. 역시나.


장벽의 끝에서 맞는 달콤한 휴식


장벽의 끝. 반대로 보면 장벽의 시작. 그곳엔 '해적'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있다. 그곳의 한 편엔 슈프레 강의 라인을 따라 테이블이 놓여 있고, 도로 쪽으로는 모래사장을 만들어 해변가를 연상케 하는 장소를 마련해두었다. 햇살은 좋았고, 힘든 걸음에 벌써 아이스크림을 들이켠 두 녀석의 기분도 좋았다. 나와 와이프도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다. 출장 중에 한 번 들러 그 느낌이 매우 좋았던 이 곳. 가족들이 함께여서 더 좋았다. 시원한 맥주 한잔을 시킨 와이프.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택한 건 당근 주스였다. 가격이 그리 싸지 않다고 생각하던 찰나, 컵의 크기와 7~8개의 당근을 믹서기 구멍에 쑤셔 넣는 직원을 보고는 '가성비 갑'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같은 가격에 암스테르담이 었다면 두 모금이면 끝날 당근 2개 정도만 초라하게 갈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한 뒤, 우리는 그렇게 당근 2개 정도만 넣어 비싸게 주스를 만들어 파는 네덜란드로 발길을 옮기기로 했다. 주스는 비싸도, '우리집'이 있는 곳이니.

해변과 같은 휴식.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출발 점, 또는 끝나는 지점에 꼭 가볼만한 레스토랑이 있다.
베를린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전쟁의 참상도 간직하고 있지만, 수도로서의 치장도 계속 된다.



참고: 베를린 여행글 모음

장벽은 없어. 이념은 남았어. Part 1.

천사가 내려온 도시 베를린

- 재건되었어도 괜찮아. 베를리너 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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