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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02. 2022

무기력의 종류와 흐름, 그 원인과 해결 방법

'열정'과 '무기력'은 무한 반복된다.

무기력이라는 함정


무기력의 힘은 대단하다.

이것은 매우 큰 아이러니다. 단어 뜻 자체는 의욕이나 기운이 없다는 뜻인데, 그것에 걸려든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압도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힘과 위력은 아이러니함마저 압살 한다.


이 무기력이란 큰 위력은 절대 한 번에 그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우리는 무기력이라는 함정에 걸려들고 마는데, 한 번 걸려든다고 해서 온 몸이 저 깊은 곳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상황을 인지하고 필사적으로 올라가려 할 텐데, 무기력은 나도 모르게 점점 더 빠져드는 모래 늪과도 같기에 내가 점점 무언가에 오염되고 있는지를 인지하지 못한다.


어느샌가 다리와 무릎을 지나 가슴에까지 모래가 들어찼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무기력해있음을 알게 되고, 그것을 인지했을 땐 이미 무기력이란 기운(?)이 온몸에 퍼진 뒤다. 무기력의 힘은 생각, 감정 그리고 우리의 몸과 건강까지도 오염시킨다. 무기력의 힘이 커질수록, 우리의 힘은 작아지게 되고, 자존감과 자신감이라는 면역체계를 완전히 무력화한다.


우리는 왜 이러한 무기력이라는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함정에 빠졌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까?


무기력함의 종류와 흐름
그 원인과 해결법


우선 무기력함의 종류를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종류에 따라 원인이 다르고, 원인이 다르다면 그 해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열정'과 '무기력'은 빛과 어둠,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기력은 열정의 부재(不在)가 아니며, 열정 또한 무기력의 부재(不在)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성격에 내포된 외향성과 내향성의 비율 문제이지 100% 외향성이나, 100% 내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정'과 '무기력'은 마찬가지고 그 비율 상태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바가 다른 것이다. 그 둘  어느 하나가 '선(善)'이고 다른 하나가 '악(惡)'의 개념은 아니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잘라 바라볼 때 삶은 고단해진다.


하여, 우리는 무기력함의 종류를 파악하고 그것의 원인과 해결법에 대해 집중하는 게 좋다.

무엇이 좋다, 무엇이 나쁘다를 판단하기 이전에.


무기력의 종류와 흐름, 그 원인과 해결법 by 스테르담


1단계


열정이 가득한 순간이다.

무기력이란 단어가 뭔지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의욕이 가득하다.


다른 사람들은 왜 이리 열정적이지 못할까, 무언가를 시도해보지 않을까란 자만심마저 든다.

이럴 때는 내가 무언가 시작한 일이 잘 될 때다. 성과가 바로 나오거나, 말 그대로 승승장구하는 경우다. 주체성을 가지고 무언가를 할 때, '자기 효용성'은 극에 달한다. '주체성'과 '자기 효용성'의 조합은 스스로를 영웅으로 만든다. 이 세상 무엇 하나 두렵거나 부러울 게 없을 정도의 에너지를 분출한다.


그러나, 이러한 때를 조심해야 한다.

열정의 온도가 너무 뜨거우면, 주위 사람은 물론 나 자신조차 데일 수 있다. 더불어, 하늘을 찌르는 자존감은 독단적 자아를 방출한다.


'열정'과 '무기력' 중 그 어느 하나를 '선'이나 '악'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다.


2단계


열정은 있으나 무기력하거나, 무기력한데도 열정은 있는 아이러니한 상태.

출장 비행기에서 자기 계발서를 읽은 적이 있다. 평소에는 자느라 바쁜데, 그날만큼은 자기 계발서에 푹 빠져 몇 시간을 몇 권의 책을 읽는데 보냈다. 마음이 충만했고, 비행기에서 내리면 무어라도 바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실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이 뜨거웠는데도 말이다.


찬찬히 마음을 돌아보니, 두 가지 원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첫째, 내가 무언가를 시작한 일의 성과가 빠르게 나오지 않고 있다.
둘째, 자기 계발서 속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를 보니 내가 하고 있는 게 초라해 보이거나, 그들이 이미 앞서간 것에 대한 허탈함을 느끼고 있다.


이럴 때는, '과정'과 '긍정적 자기 분열'이란 말을 떠올려야 한다.

'성과'는 즉시 보이는 경우가 있지만 대개는 계단식으로 나타난다. 경험해봐서 알겠지만 계단식으로 성과가 나오는 경우가 우리 삶엔 확실히 더 많다. 오히려 즉시 그 성과를 보려 하다가 열정을 잃고 무기력해지고 만다. 계단식 이론과 함께 또 하나 알아두면 좋은 게 바로 '점/선/면 전략'이다. 내가 하는 어느 하나의 일이 '점'과 같이 보잘것없어 보일지 몰라도, 추후에 그것을 '선'으로 이어 '면'으로 만들어 보면 나만의 '성과'와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앞서 가는 사람에 대한 허탈감이나 시기, 질투가 생긴다면 '긍정적 자기 분열'을 해야 한다.

'긍정적 자기 분열'이란 스스로를 메타인지하여 '객관적인 나'와 '주관적인 나'를 분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리된 나는 내가 원하는 성공을 이미 거머쥔 사람에게서 배울 점을 찾아내어 습득할 수 있다. 허탈한 마음으로는 보이지 않던 걸 볼 수 있게 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용기와 기회를 얻게 된다.


3단계


열정이 없으면 무기력해지고, 무기력하니 또 열정이 없는 상태.

열정의 온도가 식은 지 오래다. 1단계와 2단계를 거치며 열정보다는 무기력의 세력이 더 커진 것이다. 뜨거운 열정에 데고, 조급하게 성과를 추구하다 보면 맞이하게 되는 필연적 순간.


우리는 이때를 '번아웃'이나 '슬럼프'라고도 표현한다.


'열정'은 영원할 수 없다.

그 온도도 무한정 오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열정이 있을 때, 그것이 영원할 거라 믿는다. 그러나 열정이 사그라든 그 순간, 우리는 열정이 가득했던 그 충만함의 허전함을 되로 받으며 힘들어한다. 무서운 건, 그 허전한 공간을 무기력이 순식간에 들어찬다는 것이다. 무기력으로 충만한 공간에, 열정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이 때는, '초심'을 떠올려야 한다.

'슬럼프'라는 자물쇠를 여는 열쇠의 이름이 바로 '초심'이란 말이 있다. 대개 번아웃이나 슬럼프는 방향성을 잃을 때 자주 발현된다. 무언가 열심히 한다고 달렸는데, 결승선은 저 멀리 다른 곳에 있는 경우와 같다. '초심'은 방향성을 떠올려주고, 내가 지금 어디 있는 지를 '자각'하게 된다.


또 하나.

무기력하여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무기력의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짧은 동영상을 몇 시간 내리 보든, 낮잠을 하루 종일 자보든. 잠시 동안 자책감은 버리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놔두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통하지 않는다면 주위 환경을 바꾸어 보는 것도 좋다. 청소를 하든, 샤워를 하든 아니면 집 안의 가구 배치를 바꿔 보든.


끝까지 무기력하든지, 아니면 무어라도 변화시켜 보든지.


중요한 건, 굳이 자책감을 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4단계


열정도 없고 무기력하지 않은 때가 있다.

무기력하지는 않은데 열정이 없을 때도 있다.


생각해보면 이때가 어쩌면 가장 평온하거나 행복한 순간일 수도 있다.

간혹, 아주 간혹. 여행의 짧은 순간이나 주말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자책감도 없는 상태.


이때는 깊은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

'열정'이란 게 그저 좋기만 한 것일까? 열정의 온도는 결국 36.5도가 아닐까? 열정으로 이루어낸 것도 많고, 열정 때문에 나와 사람들에게 상처 준 적도 있고. 또한, '무기력'이란 그저 나쁜 것일까? 어쩌면 과한 열정으로 인해, 나에게 쉬어 가라는 하나의 또 다른 시그널이 아닐까?


사색엔 질문이 따른다.

질문이 떠오르면 사색의 깊이는 점점 더 깊어진다.


이러한 때에는 강박을 내려놓고 그저 사색하면 좋다.

사색한 내용을 기록하면 더없이 좋다. 그것은 다시 열정을 불태우거나, 열정에 불타올랐을 때 즉시 추진할 여러 아이디어가 될 테니 말이다.




무기력의 흐름은 1단계 ~ 4단계를 따른다.

그리고 무한 반복된다. 물론, 역방향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순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이 어디에 있고, 지금은 어디를 지나고 있는 지를 '메타인지'하는 것이다.


무기력은 말 그대로 힘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일부러라도 힘을 빼야 할 때가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무기력'은 '힘 빼기의 기술'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열정이 사그라들고, 무기력에 허덕이다 보면 이러한 생각은 사치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평소부터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정말로 무기력해졌을 때 이왕 이렇게 된 거, 힘을 빼볼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생긴다.


'열정'과 '무기력'은 무한 반복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공존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너무 뜨거우면 잠시 쉬어가야 하고, 쉼이 오래되면 다시금 뜨거워져야 한다.

이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러니, 과한 열정에 취하지 말고, 무기력하다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고.

그 반복 속에, 내 마음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게 나에게는 남는 장사이며, 36.5도라는 꾸준한 온도를 이어가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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