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에 대한 고찰

누가 누구를 하루살이라 말하는가.

by 스테르담

하루살이를 '하루살이'라 부르는 나의 오만이 문득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하루'는 인간의 잣대다. 우리가 부여하는 '하루'라는 시간은, 그들에게 있어 100년일 수도 있다. 우리네 100년이 우주로운 누군가에겐 하루와 같을 수 있는 것처럼.


하루살이는 알려진 것만 2,500 종에 달한다.

2,500개의 하루가 모이면 어떠한 의미를 지닐까.


성충은 짧으면 몇 시간에서 길면 2주일까지 산다.

그러나 사실, 하루살이는 애벌레 기간까지 합치면 길게는 2년 이상 살기도 한다. 긴 시간을 견뎌낸 성충의 삶은 그리고 기구하다. 무엇을 위해 성충이 된 걸까. 하루만 살기 위해? 약 2주일 간을 살기 위해?


게다가 몇몇 종은 1년은 물론 2년 넘게 사는 종도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애벌레 기간을 지난 성충이 아닐까. 극히 짧은 그 시간을 우리는 100년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루치에 지나지 않을 100년을 우리는 크게 보고 있는 게 아닐까.


또한, 잠을 자고 일어나 맞이하는 내 모습과, 내 존재마저 잊고 잠들었던 어제를 연관해보면 하루를 잊고,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는 말 그대로 하루살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그러니까, 하루살이는 어떤 종류의 곤충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명명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은, 왜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는 존재에게 떠오르는 필연이다.

왜 태어났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우리는 '하루'라는 '현상'에 속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살이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하루'에 대한 반대 개념을 들먹어야 하는지, '살이'를 뒤집어 봐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굳이 둘 다 해보자면 '여러 날의 죽음'이어야 할까. 우리의 하루하루는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니, 그리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살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죽어가는 것인가.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하루하루 아주 짧은 죽음을 반복해가고 있는 존재.


이 고민이 드는 오늘 하루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루살이의 무게는 하루치가 아니다.

그것은 꽤 무겁고 긴 영겁의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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