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밤의 묘미이자 의미
문득, 잠 못 들며 멀뚱했던 군 제대 하루 전이 생각났다.
쌩뚱하리만치 떠오른 이 생각은 왜 나에게 다가왔을까?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꺼끌한 담요와 퀴퀴한 침낭 속에서 뒤척였던 그 밤을.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평소의 생각과는 달리, 아침 해가 떠오르면 집으로 가야 한다는 현실에 나는 겁을 먹었던 것이다.
'집'이란 단어가 '현실'이란 말로 치환되던 순간이었다.
그 순간은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유에서 책임으로. 피터팬에서 후크선장으로. 유토피아에서 디스토피아로. 육체는 물론 마음과 정신까지 순간 이동하는 느낌.
그 속도는 주체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속도 안에서 자아는 요동했다.
그 속도 그대로 나는 오늘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또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르고 나면, 빛과 같은 시간의 속도를 탓하고 있을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제야 좀 알겠다.
문득 떠오른 과거의 어느 시점과 그때의 크나큰 고민은. 결국, 삶의 속도를 자각하라는 자아의 목소리인 것이다. 번쩍이는 세월의 속도에서, 순간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방법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니까. 앞으로만 향해있던 시선을 뒤로 바꾸어 나는 미세하게나마 시간을 저지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잠시 더 과거의 그때로 감정을 이입했다.
나를 뒤척이게 했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왜 나는 그토록 불안했던 것일까?
생각해보니 그때 했던 내 걱정과 고민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들이었다.
삶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또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 죽어라 걱정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거나 쉽게 풀렸고, 거뜬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당연하지 않은 무언가로 내 앞을 가로막곤 했었으니까.
나는 요즘도 간혹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잠 못 이루는 밤은 꽤 길다. 쏜살같이 달려가는 세월은 불면의 밤과 상충한다. 그렇다고 시간의 속도는 느려지지 않는다. 돌아보면 불면의 밤 또한 어느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는다. 때론, 그 밤을 나는 아예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불면의 밤에 이제 나는 더 이상 방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를 뒤척이게 하는 그 걱정과 불안은 오롯이 나를 위한 것들이니까. 그것들을 글감 삼아 글을 쓰니까. 글을 쓰며 나는 내가 해야 할 일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되니까.
불면.
잘못 이루는 밤.
혼돈하는 의미들.
이제 나는 그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것이 바로 잠 못 이루는 밤의 묘미이자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