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척, 모른 척, 괜찮은 척
행복하니 웃는 걸까요,
웃으니 행복한 걸까요
'안면 피드백 이론(Facial Feedback Theory)'.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란 잘 알려진 말은 1960년대 미국 심리학자 톰킨슨의 말입니다. 사람의 감정 체험이 얼굴 표정에 영향을 받는다는 가설을 세운 겁니다. 1988년 독일의 심리학자인 프리츠 슈트라크는 이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피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볼펜을 코와 윗입술 사이에 물게 하고, 다른 그룹은 위아래 어금니 사이에 물게 해 같은 만화를 보여주었는데요. 이는 각각 찡그린 얼굴과 미소 짓는 얼굴을 만들어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두 번째 그룹 피험자들이 만화를 더 재밌게 보았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또 하나.
현대 과학은 뇌에 대한 연구를 통해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예를 들어, 레몬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금세 입 안에 침이 고입니다. 뇌의 착각입니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란 말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특히, 운동선수들은 멘탈 관리를 위해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오감을 바탕으로 상상하면 실제 훈련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죠. 2016년 리우 올림픽 펜싱 종목에서 박상영 선수가 '할 수 있다'라고 읊조리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던 모습은 이미지 트레이닝의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뇌의 특성을 활용해 우리네 직장생활에 적용을 시켜보면 어떨까요?
직장인의
마음을 지켜주는 '3척'
'척'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그럴듯하게 거짓으로 꾸민 태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우리가 '~하는 척'을 하면 뇌는 실제로 그것을 신호로 만들어 온 몸으로 호르몬을 내어 보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론 '~하는 척'을 해야 합니다. 직장인은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를 쓰고 있습니다. 페르소나의 어원 자체가 고대 그리스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페르소나를 쓰고 있다는 말은 그래서 '연기'가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연기'는 다름 아닌 '~하는 척'입니다. 직급과 직책에 맞추어 때로는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나를 연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아닌 나를 연기하는 것은 버거운 일입니다.
동시에,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하는 척'은 이처럼 양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떠한 의미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마음을 다치게도 할 수 있고 다독일 수도 있습니다. 아래 설명하는 세 가지 '척'은 마음을 다독이기 위함입니다.
직장인의 마음을 지켜주는 '3척'을 알아볼까요?
직장인은 때로 '잘난 척'을 해야 합니다.
이는 어려운 과제를 받았거나 어려움을 돌파해야 할 때 필요한 '척'입니다. 직장이란 곳은 내 능력의 고하에 관계없이 탑다운으로 일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되어서, 아니면 할 사람이 없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슴 답답한 목표를 받았을 때, 자신 없는 프로젝트를 부여받았을 때. 우리는 '잘난 척'을 해야 합니다. '잘난 척'을 하면 잘났다는 기분이 들 테니까요.
저는 실제로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중요한 보고가 있을 때, 쉽지 않은 프로젝트를 이끌어야 할 때. 저는 '잘난 척'을 통해 좋은 결과를 이루어 인정받는 제 모습을 상상합니다. 걸을 때도 자신감을 가지려 하고, 문을 열 때도 힘차게 엽니다. 허리를 펴고 가슴을 활짝 열어보기도 하고, 입꼬리를 올려 기분을 전환하기도 합니다.
정말 효과가 있습니다.
'잘난 척'을 하니 자신감이 생깁니다. 목소리도 커지고, 적극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주눅 들 때가 많은데, 이러한 때 '잘난 척'을 해보세요. 단, 실력 없이 우쭐댄다는 느낌보다는 잘난 사람에게 걸맞은 역량을 갖추겠다는 한다는 마음으로. 그러면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함께 실제로 내 역량도 발전하는 걸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는 것을 모른 척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직장엔 수많은 호사가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인정받기 위해 정보를 누설하는 사람들이죠. 최신 정보를 선점하고 있으면 인정받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모자란다고 여겨질까 봐, 또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해지고 싶은 욕구로 인해 호사가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잠시의 재능(?)을 뽐내려 하다가 오히려 다른 사람의 표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호사가가 저에게 다가와 여러 정보를 늘어놓고, 여러 사람을 헐뜯거나 깎아내리려 할 때 저는 크게 동조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모른 척'합니다.
'모른 척'하며 상대방으로부터 먼저 말을 하도록 하여 참을성 있게 들어주면 상대방은 참지 못하고 자신이 아닌 내용을 술술 이야기합니다.
정보는 얻되 같이 남을 헐뜯으면 안 됩니다. 호사가는 호사가를 알아봅니다. 저도 이러한 통찰이 없었을 땐, 함께 동조하며 여러 정보를 나누었는데 그 말이 돌고 돌아 오해와 갈등을 낳는 걸 보고 '모른 척'을 결심한 겁니다. 함께 험담을 했으면서, 제가 그런 말을 한 것처럼 악용하는 사람도 있었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뒤 오히려 서로 경계하게 된 사례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른 척'.
불필요한 갈등과 상처를 줄이는 묘약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인격적인 공격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폭언이 날아오거나 질타를 받을 때. 이러한 때 여러분은 마음을 어떻게 지켜내고 계신가요?
인격을 비하하거나 폭력적인 언급을 들었을 때.
저는 '못난 척, 괜찮은 척'을 함께 떠올립니다. '척'의 역설을 활용합니다. 앞서 '척'은 '연기'를 하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척'은 근원적 자아가 아닙니다. '못난 척'을 한다는 건, 정말 내가 못난 게 아니라는 메타인지적 발상입니다. 분노하고 그것을 삭이는 것보단 내가 못남을 연기했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합니다. 그러한 상황을 부정하려면 할수록 마음만 더 아파집니다. 여기에 '괜찮은 척'을 얹으면 마음의 상처는 그리 깊게 베이지 않습니다.
'괜찮은 척'은 나를 다시 일으키는 소중하고 강력한 에너지입니다.
주눅과 우울함 속에서 나 자신을 구원하는 '척'입니다. '괜찮은 척'은 주눅과 우울함의 시간을 단축시킵니다. '괜찮은 척'을 하다 보면 정말 괜찮아집니다.
안 괜찮아도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365일 내내 괜찮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오늘도 저는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를 연기합니다.
연기할 때는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하지 않으면 나 자신과 내 역할의 괴리감만 커집니다. 배우들이 각자의 역할에 몰입하여 맡은 캐릭터를 잘 살려낼 때. 사람들의 호평을 받고, 상도 받게 됩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배우로서의 자긍심일 겁니다.
자긍심을 얻은 배우는 나날이 발전하는 연기를 보이게 될 겁니다.
직장인이라는 역할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언젠간 회사를 떠나야 하는 날이 분명 옵니다.
그렇다면, 제한된 시간 안에 혼신의 힘을 다해, 후회 없이 연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메소드 연기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를 벗어던질 땐, 그것이 살아가는 데 아주 소중했던 경험이었구나... 를 깨닫게 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상처받아 본 사람이, 상처를 보듬을 줄 아는 법이니까요.
[종합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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