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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21. 2022

체급이 다른 사람이 덤빌 땐 무조건 피할 것

체급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고, 스스로 단련해 가는 것이다.

주재원을 마치고 본사로 복귀했을 때였다.

나는 몇 뼘은 더 성장해 있었다. 내가 맡은 사업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짊어졌어야 했던 그때는 고달픈 피로감으로 숨을 쉬지도 못할 정도였으나, 그것은 분명 본사에서 주어지는 일을 하는 것 이상의 희열이자 쾌감이었다. 진정한 주인 의식을 체득할 수 있었고,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것의 보람을 몸소 느꼈으니 성장하지 않을 수가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열정이 다시 돋아난 나는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업무에 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긴박감과 다이나믹한 무언가가 빠져있어 그런가 싶었다. 그러다 나는 잊고 있던 무언가의 스멀스멀한 기운을 느꼈다. 아니, 다시 그것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바로 '정치'와 경쟁 그리고 '갈등'이었다.


해외 주재 기간엔 현장에선 경쟁사와 소비자만을 바라보며 일했다.

어떻게 하면 내 브랜드를 더 친숙하게 만들고, 내 제품이 소비자의 삶을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러하기 위해 나는 현지 문화에 뛰어들었다. 사람을, 문화를 그리고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그 공부는 내 첫 책이라는 결실을 맺을 정도였다. 내 머릿속엔 온통 현지 시장에서의 경쟁과 성과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그것이 내 열정의 원동력이라고 지금도 믿는다.


그러나 본사는 달랐다.

같은 팀에 유독 나를 견제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달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아직 주재원의 경험을 하지 못한 그는 눈에 띌 정도로 나를 경계했다. 내 의견에 반대하거나, 비꼬우거나, 협조를 하지 않는 방법을 쓰곤 했다. 이것은 일 하는데에 있어서 매우 성가신 무엇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휩쓸리지 않아야겠단 생각을 했다. 더불어, 아직 꺼지지 않은 현장에서 불 붙인 그 열정을 지켜가고자고 다짐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나 조차도 본사의 흐름에 동요되었다. 어느 날 나는 나를 견제하는 그에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와 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 머리를 채우고 있던 성과와 브랜드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어느새 그 공간은 '사내 정치'와 '동료와의 경쟁'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주체적으로 일하며 불 붙였던 열정의 불길도 꺼지고 있음은 당연했다.


주위 평가가 달라졌다.

상사들은 나를 좋지 않게 보기 시작했다. 나를 견제하던 그 사람과 똑같은 레벨로 취급받기 시작한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진흙탕 속에서 나에게 싸움을 걸어온 것이다. 그 싸움에 휘말리는 순간, 나는 그 진흙을 묻힐 수밖에 없다. 누가 먼저 싸움을 걸었는지, 갈등을 유발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흠뻑 덮어쓴 진흙이, 이미 나는 '이전투구(진흙탕에서 싸우는 개 - 작가 주-)'에 휘말렸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슬럼프가 몰려왔다.

뜨거웠던 열정과 높았던 의지만큼이나, 이전투구로 인한 내 이미지 손실은 컸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것을 회복했다. 내 이미지와 브랜드 그리고 평판. 그것보다 더 중요한 내 열정과 자존감을.


그러함으로, 나는 몇 뼘은 더.

아니, 몇 배는 더 성장해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내가 휘말렸던 이전투구의 깨달음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체급이 다른 사람이 덤빌 땐 무조건 피하라!'


만약, 성인에게 초등학생이 시비를 걸고 달려들었다고 하자.

우리가 성인이다. 선택은 두 가지다. 첫째, 함께 싸우거나. 둘째, 피하거나. 첫 번째 방법으로 싸워서 이긴다면 우리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어른이 초등학생과 겨뤄 그를 짓눌렀다고 손가락질받을 것이다.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는지, 어느 만큼 싸가지 없이 그 아이가 달려들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만약 앞서 이야기한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나는 무조건 피할 것이다.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피하는 방법에도 두 가지가 있다. 무시하는 것과 경청하는 것이다. 전자는 좋은 방법은 아니다. 무시하면 할수록 갈등은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내가 만약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한다. 나에 대한 그의 시기와 질투의 원인을 조금씩 들어주었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를 서로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는 제풀에 꺾여 나와의 갈등을 멈췄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러했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진흙을 뒤집어쓰고 분탕질에 휘말린 걸 후회하지 않는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경험이었으니까. 그러나, 앞으로는 다시 그것을 똑같이 경험하고 싶진 않다. 시행착오는 한 번으로 족하다. 이젠 그것을 발판으로 더 성장해야 할 때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거나, 경험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면 그 방법을 더 선호해야 한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연차가 쌓일수록 더 그러하다.


체급이 다른 사람이 덤빌 땐 무조건 피하자.

경청을 하며 슬기롭게 피하자. 제 풀에 꺾이도록 대인배의 면모를 보여주자. 그것이 가능한 건, 내 성장으로 인함이다. 많이 배우고, 많이 경험하고 또 많이 생각하고 깨달아 남들보다 더 많이 성장해야 한다. 길거리 웅덩이만큼의 체급을 가진 사람들을, 강과 바다가 동요하고 상대할 필요는 없다.


웅덩이.

강.

바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체급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고, 스스로 단련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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