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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22. 2022

가족 단톡방의 성립 조건

그 여러 과정의 우여곡절은 그러니까 당연한 게 아닌 것이다.

가족 단톡방.

아내와 아이 둘.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젊은 남녀가 운명처럼 만나야 한다. 만나기만 해서는 안된다. 탐색이 시작된다. 탐색은 호감으로 발전되고, 호감은 사랑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대개 호감 단계에서 넘어가지 못하는 게 남녀관계다. 기어이 사랑으로 승화하는 단계를 우리는 운명이라 말한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사랑이 결혼으로 가느냐의 길목엔 다양한 갈래의 선택지가 있다. 결혼이라는 길로 들어서는 커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운명을 넘어 또 다른 운명을 선택하는 운명적인 운명. 그저 운명과 인연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쓰지 않으면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아직 멀었다.

가족 단톡방이 성립되려면.


사랑이라는 낭만과 결혼이라는 현실을 이룬 두 사람은 그들의 페르소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점점 옅어지는 낭만과, 점점 짙어지는 현실. 남자와 여자는 남편과 아내로 둔갑한다. 먹고사는 걸 해결해야 한다.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하고, 누군가는 안을 살펴야 한다. 그 누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건 없다. 다만, 자연스럽게 그 역할은 정리된다. 정리가 되었다면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에 충실하지 않으면 결혼이라는 약속은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이 지속되지 않는 경우는 결혼의 이면에 있는 '낭만'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이겨내고 결혼하는 것 같지만, 결혼은 사실 현실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낭만적이지만 차가운 선택이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혼은 낭만이라는 헛물만 켜다 냉혹한 현실로 회귀하는 운동일뿐이다.


또다시.

끝이 아니다.


남편과 아내는, 아빠와 엄마라는 존재로 다시 한번 더 허물질을 해야 한다.

남자와 여자에서 남편과 아내로 둔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오는 이 변화는 가히 역대급이다. 낭만이든 현실이든. 사랑이든 미움이든. 그저 둘 만의 일이었는데. 이젠 제 3자, 4자가 개입되는 것이다.


첫째가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난다.


말도 못 하고, 스스로 먹지도 못하고.

대변과 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를 어르고 달래어 키워내야 한다. 뒤집기까지. 일어서 걸을 때까지. 말을 할 때까지. 글자를 깨우칠 때까지. 저를 인식하고 아빠와 엄마를 부를 수 있을 때까지. 그 과정의 보살핌과 시간은 우주의 무엇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자, 이제 거의 다 왔다.

품 속의 아이들은 어느새 부모의 품이 아닌 다른 곳에 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아이들은 학교와 사회라는 곳을 경험하며 떨어져 있어도 연락이 되어야 하는 문명의 이기를 하나씩은 가지고 다녀야 한다.


바로 휴대폰이다.

그리고 나는 그 휴대폰과 한 달, 한 달의 통신비를 내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안을 살펴야 한다는 조건. 아니, 그 이전. 결혼과 연애. 만남과 탐색의 시작까지.


이것이 바로 가족 단톡방의 성립 조건이다.


어릴 적, 가족과 사랑이라는 결핍으로 허전했던 나는.

가족 단톡방에 뜬 간단한 문자 하나로 세상을 달리 본다.


가족 단톡방의 탄생은 그런 내게 안도와 감사함이다.

그것은 내게 가족이 있음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가족 단톡방이 생기기까지.

그 여러 과정의 우여곡절은 그러니까 당연한 게 아닌 것이다.


애써 전하는 메시지는 오늘 하루를 응원하는  당연한 인사이지만.

이 모든 당연함과 당연하지 않음을 그저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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