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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25. 2022

내 발가락이 낯설어 보일 때

나는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무언가에 골똘할 때 낯선 것들이 있다.

평소에 쓰던 단어도 그것을 여러 번 되뇌면 무언가 새롭다. 내가 이런 말을 써왔단 걸까... 란 낯선 기분은 생소하기 짝이 없다. 그동안 잘 사용해온 단어인데, 그리 새로워 보일 것도 없고 어렵지도 않은 말인 데에도.


이것은 시선에도 적용된다.

휴가 중 해변 모래사장에서 바라본 내 발가락이 그랬다.


두 번째 발가락이 이리도 길었었나?

엄지발가락과 쌍벽을 이루는 그 길이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무엇이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보니, 그 낯섦은 한층 더 배가 되었다.


'아, 내 발가락이 이렇게 생겼었구나. 움직이면 이런 모양이구나.'


발가락과 내가 조우할 일은 일상에서 그리 많지 않다.

집에 돌아와 양말을 벗고, 발을 씻는 것은 매일의 반복이지만 그것을 '조우'라고 말할 순 없다.


그렇게, 그저 흘려보내는 것들이 삶엔 너무도 많다.

인지하지 못하고, 조우하지 않는 것들은 쉽게 잊힌다. 아니, 잊힌다기보단 나도 모르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내가 기억하고, 잊는 과정에 그저 그 자리에 있다.


앞서 말한 단어도, 내가 사용하거나 그러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뜻이 바뀌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썼던 단어를 나는 그저 흘려보낸 것이고, 어느 시점에서야 그 의미와 발음을 되뇌며 그것을 낯설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세상엔 처음 봐서 낯선 게 있고, 다시 봐도 낯선 게 있다.

생전 처음 가보는 여행지에서의 모든 것은 전자의 의미고, 발가락을 보며 낯설어한 그것은 후자에 속한다.


잘 알던 단어가 낯설 때.

내 몸의 일부가 낯설어 보일 때.


나는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잊고 있던 걸 떠올릴 때, 그것은 '숨'과 연결된다.


결국, 낯선 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낯섦이 없다면, 나의 존재를 의심할 겨를이 없다.


좀 더 많은 낯섦을 만나길 바란다.

좀 더 많은 낯섦을 알아차리길 바란다.


내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내 존재를 의심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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