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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15. 2023

아침의 부스스함과 저녁의 초라함을 받아들여주는 사이

그러함으로 나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풍족하게 보낼 수 있었으니.

'가족'은 한 집안에 모인 사람을 말한다.

'식구'는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을 말한다.


뜻과 의미가 다르지만, 어찌 되었건 그 둘은 모두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의 단위를 일컫는다.

요즘은 그 의미가 '퇴색'되었는지 아니면 '확장'되었는지, 혈연의 범주를 벗어나 사용된다. '혈연'이 가족과 식구의 근원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그 의미가 '퇴색'되었을 것이고, 뜻에 충실한 사람들에게 그 의미는 '확장'이다.


가족과 식구에 대한 정의에 있어, 나에게 그 의미는 '퇴색'과 '확장'의 사이를 오간다.

내게 중요한 건, '아침'과 '저녁'이다.


'아침'은 존재에게 있어 무방비의 시간이다.

눈을 떠 저 스스로가 저 스스로임을 인식하고. 몸을 일으켜 하루를 시작하는 동물. 어제의 큰 열정과 의지는 리셋되고, 갑옷과 같은 옷도 가면과 같은 화장도 아직 착장 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존재. 머리카락은 쭈뼛하여 사방으로 뻗쳐있는 정돈되지 않은 모습.


'저녁'은 어떤가.

일상을 마치고 돌아온 존재는 초라함으로 가득하다. 휴대폰 배터리와 같다면 빨간 불이 들어오기 일보직전. 전쟁과 같은 하루를 마무리하고 돌아온 우리네 모습은 그렇게 화려하지가 않다. 어쩌면 초라함을 감추려, 재 충전하려 우리는 집으로. 가족과 식구로 발걸음을 돌리는 게 아닐까.


내게 있어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이 아침과 저녁을 온전히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다.

이것을 받아들여주는 사람과 함께 하는 곳을, 그래서 나는 '집'이라 일컫는다. 당연한 말일까? 아니다. 나에게 있어 가족의 또 다른 의미는, 당연해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게 여겨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순간, 사랑과 배려는 공중으로 휘발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아침과 저녁을 수용하고 포용해주는 사이일수록. 그 특별함을 인정하고 상기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아침엔 부스스하고, 저녁엔 초라하다.

그러나 그 부스스함과 초라함을 인정해줄 사람들이 있다.


'가족'은 한 집안에 모여 아침의 부스스함을 바라봐 주고.

'식구'는 저녁의 초라함을 함께 다독여주는 사이.


뭐, 그런 게 아닐까?


아니, 반드시 그러한 사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함으로 나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풍족하게 보낼 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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