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Mar 03. 2023

이젠 동안이란 말이 싫다.

온전히 내 나이를 받아들이며

한때 나는 어려 보인다는 말에 들썩였던 적이 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뭔가 주목받는 것 같고, 정말로 몇 살은 더 젊어진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은 왜 들었던 것일까. 어른이 되고, 늙어 간다는 것에 대한 마음속 깊은 곳 어느 내면 아이의 반항이었을까. 아니면 정말로 한 살이라도 더 어리고 싶은 앙망이었을까. 어려 보이고, 젊어 보인다는 말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는커녕 대부분의 사람들의 얼굴엔 화색이 도는 걸 보면, 그 내면 아이의 반항과 앙망이 내 마음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단 생각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동안이란 말이 싫다.

고백하건대,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듣고 더 여려 보이려 노력한 적이 있다. 새로운 옷을 사기도 하고, 평소에 관심 없던 신발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필터를 써서라도 어려 보이게 사진을 찍으려 했던 날이 분명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다 부질없단 생각이 들었다. 어려 보이려 했던 모든 건 노력이 아니라 주책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어려 보인다'라는 말엔 역설이 숨어 있다.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는 말은, 이미 나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단 뜻이다. 어리면 어린것이지, 어려 보인다란 말에 화색을 띠는 건 이미 늙어버린 나를 우회하여 우매하게 인정하는 것뿐이다.


나는 더 이상 주책을 부리고 싶지 않다.

아저씨란 호칭도, 나오는 배도, 앉으나 설 때 '아이고'를 몇 번이고 부르짖는 것도.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꽤 멋스럽게 빼어 입은, 젊어 보이는 옷을 입고 어려 보이는 척 연기를 해도 그것들은 재채기처럼 숨길 수 없는 무엇이다.


나이는 먹는 게 아니다.

나이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린것들로부터의 이별과.

나이 들어가는 것들의 만남이.

그렇게 새삼스럽지 않도록.


굳이 '동(童)'자에 집착을 해야 한다면, 나는 '동안'이 아니라 '동심'을 추구하려 한다.

겉이 늙고, 관절이 쇠하여지는데 어림을 연기하는 것은 주책일지 모르지만. 마음 한 곳에 어른이 아닌 조금은 다른 마음을 품는 것은 주책이 아니니까. 그 마음은 누구에게 보이려 하는 것도 아니니, 근사하게 꾸밀 필요도 없다.


그저 간혹, 무언가 삶이 너무 팍팍할 때.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마음이 시키는 무언가를 은밀히 혼자 해보는 것으로 족하다.


단 것을 먹거나.

소리 내어 울거나.


어려 보이고 싶은 바람은 놓은 지 오래다.

다만, 아주 조금의 어린 마음을 잃지 않고 싶을 뿐이다.


온전히 내 나이를 받아들이며.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의 부스스함과 저녁의 초라함을 받아들여주는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