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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06. 2023

순대를 로맨틱하게 먹는 법

순대와 로맨틱하단 말의 거리는 그리 가깝지 않지만.

한국을 떠 타지에서의 생활은 한국의 맛을 앙망하게 만든다.

재밌는 건, 떠오르는 맛들이 매우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선 '뭔가 칼칼하고 시원한 게 없을까?' 또는 '살은 안 찌는 데 든든한 뭔가가 없을까?'라는 식이었다면, 이곳에선 '김치 삼겹살 먹고 싶다', '순대가 간절히 생각난다'처럼 특정 메뉴가 떠오른다.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 아내와 둘이 남은 어느 주말.

순대를 잘하는 한국 식당을 찾았다. 나와 아내는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메뉴가 서로 다르지 않은 경향이 있다. 이것은 운명이라 해도 좋고, 행운이라 해도 좋다. 함께 떠올린 음식을 서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나는 행복이 어디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란 걸 깨닫기 때문이다.


순대국밥 하나.

모둠 순대 하나.


국밥 하나를 나눠 먹고는, 다양한 고깃살과 어우러진 순대를 맛있게도 먹었다.

연애할 때라면 먹고도 모자랐겠지만, 모든 순대의 반이 남겨진 것을 두고 우리는 피식 웃었다. 집에 싸갈 수밖에. 다행히, 이곳은 남은 음식을 싸 주는 문화가 아주 자연스럽다.


둘이 맞이한 일요일 아침은 고요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수학여행 중. 느지막이 일어나 영화 한 편을 보려다, 문득 어제 포장해 온 순대가 떠올랐다.


"순대 먹으면서 볼까?"

아내는 영화를 일시 정지 시켰다.


누가 무얼 하자 한 건 아니지만, 착착 호흡이 맞았다.

나는 순대를 데우고, 아내는 국물과 파김치를 준비했다.


접시 테두리를 순대로 두르고, 그 가운데에 간과 허파 그리고 머리 고기 등을 가지런히 놓았다.

놓고 보니 꽤 근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연애 때라면 테두리를 두른 순대를 하트 모양으로 하지 않았을까. 속으로 웃으며 순대를 데웠다.


순대와 로맨틱하단 말의 거리는 그리 가깝지 않다.

그러나 오랜만에 아이들이 없는 집에서. 그렇게 내 어깨에 기대거나, 아내의 배에 머리를 베고 영화를 본 그날의 시간은 나에게 로맨틱함으로 남아 있다.


로맨틱함의 의미와 기준은 세월이 흐르며 달라진다.

어릴 땐 음식이 로맨틱해야 했는데, 지금은 음식의 로맨틱 여하를 따르지 않는다.


그래, 사람이.

그리고 마음이 로맨틱해야지.


순대를 먹은 포만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어느 영화의 중간, 아내의 손을 슬쩍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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