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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26. 2022

MBA는 더 비싼 밥을 먹게 해 줄까?[Part.1]

MBA를 통해 배운 것들

MBA 스터디를
기웃거렸던 추억


대리 시절이었다.

십 수년 전이었고, 생각이 많았던 그때. 기대했던 직장생활이 아니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을 그즈음이었다. '나는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란 생각과 '더 늦기 전에 지금 이 상황을 급격하게 바꾸거나 바로잡아야(?) 한다'라는 조급함이 몰려왔었다. 발을 동동 굴렀다. 터져버릴 것만 같은 현실과의 괴리감이 잠을 못 자게 했다. 주위를 살폈다. 여기저기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고만고만한 월급을 받으며 고만고만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싫었다. 나도 그렇게 고만고만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한 확신은 분명히 나를 고만고만하게 만들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서서히 끓어오르는 냄비 속 개구리가 나와 다를 바 없다는 현실 자각이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 것이다.


그 시절, 새로운 상무님이 낙하산(?)과 같이 내려왔다.

내 팀장님보다 어렸던 걸로 기억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MBA를 다녀왔단다. 대기업이지만 잘 나가지 못했던 그 회사에서 염증을 느끼고 대리 때 퇴사를 한 뒤, MBA를 다녀와 컨설팅 회사에서 몸값을 올리고 우리 회사로 임원으로 스카우트된 거였다.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그래, MBA였구나. 이 고만고만한 현실을 바꿔 줄 정답! 구원과도 같은 MBA란 단어에 나는 흠뻑 취해있었다.


GMAT이라는 두꺼운 책을 산 뒤, 강남역 근처 MBA 스터디에 가입을 했다.

내가 이렇게 실천력이 대단했던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놀라며 스터디를 시작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돌이켜 보니 나는 그저 MBA 스터디를 그저 기웃거린 것에 불과했다. 한 마디로 처참히 MBA 스터디를 그만두었다는 말이다. 뭣도 모르고, 그저 현실이 싫어서. MBA가 더 비싼 밥을 먹게 해 줄 거란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어떻게'에만 혈안이 되어 달려든 결과였다.


두꺼운 책 몇 장에 밑줄 끄적거린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그렇지 뭐...'란 생각과 함께 MBA 스터디에 대한 추억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MBA는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


사람은, 아니.

직장인은 자기 합리화를 통해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현실과 이상에서 오는 괴리감과 그 괴리감에서 피어난 인지부조화 현상을 타파하는 데 자기 합리화만큼 쉽고 편한 게 없기 때문이다. 천둥과 같은 아침 알람 소리에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월급과 대출을 떠올리면 기어이 몸은 일으켜진다. 일어나기 싫다는 마음과 출근해야 한다는 인지부조화는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MBA는 나에게 현실과의 괴리가 매우 큰 무언가였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MBA에 합격을 했다면. 나는 그때 하던 일을 관두고 2년 이상의 시간을 해외로 나갔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더 큰 것을 가져다준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나는 빚을 내서라도 다녀왔어야 했다. 그러나 내게 그런 배포는 없었다. 당장 먹고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훌륭한 자기 합리화가 되어 현실을 직시하게 한 것이다.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전략적 부작위(不作爲)'였을까, 아니면 '비겁한 부작위'였을까.


당시엔 후자가 맞았다.

비겁한 부작위. 열심히 공부하지 못하고, 배포 없이 현실에 수긍해야 했던 내 모습은 비겁함 그 자체였다. 나는 MBA를 신 포도로 만들었다. 먹을 것이 못된다고 결론지었다. 말이 2년이지, 거기에 투자할 돈과 시간이 나에게 그 이상으로 되돌아올까란 의구심을 키웠다. 실제로, MBA 졸업자의 희소성이 옅어지는 것도 한 몫했다. 예전엔 MBA가 젊은 임원을 배출해내는 성공의 물꼬였지만, 점점 MBA에 대한 공급이 더 많아지면서 대학원과 같은 성격으로 변모해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자기 합리화의 함정이었다. 어느 학교, 어느 레벨의 MBA를 가느냐와 졸업할 당시 개개인이 가진 역량은 그 변화의 추세로 단정 지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MBA는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 내가 바라보기엔 너무나 비싼 것. 꾸준함도 비용도 부족한 내가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하지 못해서 못하는 것.


자기 합리화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비겁한 부작위'에서 '전략적 부작위'로.
MBA라는 기회.


자기 합리화의 매력은 멈추지 않는다는데에 있다.

나는 어떻게든 나 스스로를 꾸려가야 했다. 안 하는 것이든, 못 하는 것이든. 못난 나든, 꾸준하지 못한 나든. 어르고 달래며 이 세상을 잘 살아내야 하니까 말이다.


MBA를 신 포도로 간주한 뒤.

내가 재설정한 자기 합리화는 현업에 충실하자는 것이었다. 답은 현장에 있으니, 현장에서 답을 찾자는 것이었다. 마침, 번아웃 이후 시작한 글쓰기로 내 삶은 변화해 있었다. 내 일과 직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새롭게 바뀌어 있었다. '본업'에서 '업'을 찾는 법을 알게 되었고, 주인과 머슴 관계가 아닌 '주체적 주인의식'으로 내 일을 바라보니 반복되는 일들도 가치 있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일생일대의 변화였다. 고만고만했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던 순간. 내 주위 사람과 내게 일어나는 일은 고만고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고만고만한 일은 없다.

다만, 고만고만하게 바라보는 시선만이 있을 뿐.


대부분의 직장인은 고만고만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선을 달리하니, 직장은 배울 것 투성이었다.

본업과 현장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식과 깨달음이 쏟아져 나왔다. 책에서만 보던 이론을 직접 체험하며 나는 빛나는 보석들을 마구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다 회사로부터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다.

MBA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인재 발굴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었다. 행운이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행운을 맞이하기 위해선 일어나 어느 골목으로 걸어가야 한다. 준비된 자에게 행운이 온다는 말은 진리다. MBA고 뭐고, 그 좌절감에 고만고만하게 일하고 고만고만하게 직장생활을 했다면 내게 오지 않을 행운이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현장에서 줍줍 하던 보석들이 그날따라 유난히 더 눈부셔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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