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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12. 2023

글을 쓰지 않으면 왜 죄책감이 들까?

스스로에 대한 꾸짖음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미안함

나는 '집단 무의식'을 믿는다.

이는 심리학자 융(Jung)이 창시한 분석심리학의 중심 개념이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공유된 정신적 자료의 집합을 말한다.


인류에겐 보편적이고 선험적인 심상들이 있다.

'감정'을 생각해보면 쉽다. 인종은 달라도 공포와 안도, 슬픔과 기쁨에 대한 정서적 반응은 대개 같다. 위험한 건 피하려 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본성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민족적으론 다를 수 있다.

인류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좀 더 하위로 가면 그네들의 환경과 특수한 경험에 따라 삶의 방식이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집단주의'와 '빨리빨리' 문화를 떠올리면 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잦은 침략을 받았으니 뭉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위험에서 벗어나야 하는 상황과 집단주의 속 비교문화 그리고 뚜렷한 사계절의 변화는 좀 더 빠른 것을 추구하는 성격으로 기민하게 발달했다.


이러한 집단 무의식에 기반해서일까.

시대가 바뀌었으나, 우리네 정서는 그대로다. 개인주의화가 되며 집단주의가 해체된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집단주의의 시선으로 개인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이 사회에 만연하다. 삶의 방식이 바뀌었을 뿐, 그 정서와 무의식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빨리빨리'라는 조급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그 추구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느낌이다.


또 하나.

내가 느끼는 우리네 집단 무의식의 또 다른 선물(?)은 가만있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죄책감이 참으로 신기하다. 스스로를 괴롭힐 정도로 가만있지 못하는 이러한 무의식은 왜 생겨난 걸까?


집단주의로 인한 '비교의식'과 '빨리빨리'의 합작품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를 발전시켜왔지만, 반대로 상처를 많이 내기도 했다. 지금도 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비교하며. '왜'보단 '어떻게'란 속도에만 치중하고 있지 않은가. 열심히 내달려왔는데 정작 나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왜 이토록 달려왔는지를 모를 블랙 코미디와 같은 삶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죄책감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무언가를 하지 않을 때 드는 그것과는 다르다. 무언가를 하지 않을 때 드는 죄책감이 나는 가만히 있고 앞서가는 세상에 대한 불안감에서 오는 스스로에 대한 꾸짖음이라고 한다면, 글 쓰지 않을 때 다가오는 죄책감은 스스로에 대한 미안함이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다는, 그 잠깐의 시간을 내지 못한다는 그 미안함. 그러니까,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꾸짖음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미안함인 것이다.


나는 이 죄책감을 매우 반긴다.

스스로를 어루만질 수 있는 시간의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죄책감이 들면, 나는 글을 쓴다.

사과의 뜻으로. 앞으로 더 잘하겠다는 다짐의 뜻으로.


글을 쓰기 전에 들던 죄책감은 스스로를 무너뜨리곤 했지만, 글쓰기 이후의 죄책감은 나를 돌보고 또 나를 살린다.


같은 죄책감인데도 이리 다르다.

스스로를 괴롭히던 나에서, 스스로를 어루만지는 나로 거듭난 것이다.


나를 계속해서 자책할 것이냐.

나를 계속해서 책임질 것이냐.


쓰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나를 위한 죄책감을 듬뿍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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