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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17. 2023

글쓰기에도 쉼이 필요하다

분명한 목적이 있으면, 우리는 쉴 수 있다.

날아가는 새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글쓰기를 시작했던 내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싶다. 갑자기 터진 마음의 봇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쓰고 또 써도 아직도 써야 할 것이 산더미였다. 살고 싶어서, 숨 쉬고 싶어서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정말 숨이 가쁠 정도로 썼다. 물론, 숨은 가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그동안 조마조마하며 숨죽여 살아온 지난날의 부족했던 산소를 한 번에 몰아 쉬는 것과 같은 상쾌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하루에 열 편이 넘는 글을 쓴 적도 있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았다. 더 못쓰고 잠든 것이 한(恨) 일 때가 있을 정도였다.


내 성격상 한 번에 무얼 몰아서 하면, 이내 그것은 멈추기 일쑤였다.

재빠르게 달아오른 온도는, 그보다 더 빠르게 식어간다. 내 보통의 열정은 그러했다. 때문에, 내 글쓰기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어차피 또 금방 포기하거나 그것에 대한 열정이 시들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지난날의 내 평생 습관을 보면 매우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그러나.

글쓰기만큼은 보기 좋게 그 합리적 의심에서 벗어났다.


그러다 찾아온 글쓰기의 위기를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평생 내가 이룬 것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보잘것없는 것이 아니란 걸 증명해 내려는 마음이 들어차, 글쓰기는 어느새 나에게 강박이 된 것이다. 시키지 않아도,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술술 나오던 글의 보(洑)는 그렇게 막혀버렸다. 숨이 막혔다. 막힌 보에서 간혹 흘러나오는 몇몇의 글엔 감흥이 없었고, 그것은 나를 관통하지 못했다.


숨통을 트려 하늘을 올려다봤다.

전깃줄에 새가 앉아 있었다. 어라. 새는 날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새에겐 다리나 발이 있다. 새도 언젠간 땅을 디뎌야 하는 것이다. 새는 왜 계속해서 날고 있다고만 생각한 거지? 날아갈 땐 뒤를 돌아보지 않는 존재도, 몸뚱이를 잡아당기는 중력을 이겨내는 날개에도. 쉼은 필요한 것인데. 쉼은 필요한 것인데. 쉼은...


돌이켜 보니 내 열정의 타오름과 소진은 쉼 없이 달린 결과들이었다.

쉼을 허용치 않는 그 마음은 바로 강박이었다. 이 강박이 글쓰기에도 찾아온 것이다. 그럼 그렇지. 잠시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눴다. 글쓰기를 통해 얻은 기술이다. 쉼을 갖자고 종용했다. 강박을 내려놓자고 했다. 글쓰기만큼은 멈추지 말자고 합의했다. 목적은 있으나 목표는 없는 글쓰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끊임없이 써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니, 목표를 세울 필요가 없었다. 하루 또는 일주일. 아니면 한 달이라도. 띄엄띄엄이라도 글 하나를 써내면 나는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것은 멈춘 게 아니니까. 매일매일 해야 한다는 강박보다 중요한 건, 어느 때가 되었건 멈추지 않는 게 중요한 것이다. 글 하나를 써 놓고, 일 년 뒤에 글 하나를 쓰더라도. 그건 멈추었다고 말할 수 없다. 멈추지 않았다고,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목적이 분명하면, 우리는 쉴 수 있다.

목표가 난무하면, 강박은 쉼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쓴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 날도. 계속해서 써 나갈 것이다.


이제는 쉬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강박을 내려놓을 줄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글쓰기의 본질을 나는 잘 알기 때문이다.


글쓰기만큼은 살아 숨 쉬는 동안.

절대 멈추고 싶지 않다.


어쩌면 글쓰기는.

나에게 쉼 그 자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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