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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25. 2023

그저 각자의 길을 가고 있을 뿐

내 삶의 내비게이션이 어디로 찍혀 있는지가 궁금하다.

약속에 늦은 어느 날이었다.

약속 시간은 오후 3시.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도착 예상 시간은 오후 2시 50분이었다. 주차 자리를 찾고, 주차장에서 약속한 카페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정확히 오후 3시에 도착하는 루트였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일체의 변수가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 약속을 한 지인에겐 이미 사정을 이야기하여 큰 문제는 없었지만,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언제나 약속 장소엔 15분 먼저 도착하는 습관을 나는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지켜내지 못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아니, 불편한 것을 넘어 자책을 했고, 자책은 자존감을 건드리기까지 했다. 그 원인과 치료법을 나는 모른다. 그렇게 태어난 걸, 기질이 그러한 걸 낸들 어쩔까.


출발한 지 5분.

도로에 들어섰다. 변수는 없었다. 내비게이션의 도착 예상 시간은 여전히 2시 50분이었고, 간혹 운 좋게 신호에 걸리지 않고 교차로를 지나면 그 시간은 2시 49분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나.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옆 차선을 보니 좀 더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차선을 바꾸었다. 조금 빠른 흐름을 타는가 싶더니, 이내 다른 차선보다 더 느린 상황이 일어났다. 옆 차선에서 내 뒤에 있던 차량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저만치 앞으로 갔다. 시계를 보니 예상 도착 시간은 2시 55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음의 발을 동동 굴렀다.

알고 보니, 내 앞의 차가 지나치게 느리게 가며 그 앞 길을 계속해서 내어 주고 있던 것이다. 옆 차선으로 옮기려 하니 이미 나보다 그 상황을 빠르게 눈치챈 뒤차들이 계속해서 나를 앞지르고 있었다.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하필이면 왜 이런 차가 내 앞에...'


더 나아가.

'아니, 이 차는 왜 이리 나를 괴롭히는 거지? 운도 더럽게 없지. 왜 이런 차를 마주한 거지?'


더 약 오른 것은, 이 차는 내내 내가 가는 길과 같은 곳을 향했다는 것이다.

차선을 바꾸지 못하고 있던 그때, 그 차가 계속해서 내 앞에서 쭈뼛쭈뼛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드디어 그 차를 가로질러 가던 그때, 내비게이션의 예상 도착시간은 이미 3시를 훌쩍 넘겨버린 시간이었다. 그 차만 아니었다면, 그 차가 내 앞길을 가로막지 않았다면, 그러한 악연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분노에 휩싸인 그 순간에 지인과 즐거운 대화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과의 만남도 다르지 않다.

잘 나간다고 생각할 때, 또는 그 반대의 상황이라서 너무나 조급하고 간절할 때. 꼭 내 길을 막거나, 앞으로 나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난다. 때로 나는 그 사람들이 신의 장난으로 내게 주어진 빌런이라 생각하곤 했다. 사람도, 신도 다 싫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도 지긋지긋했다.


그러니까, 하필이면 늦은 그날의 내 차 앞에 그런 차가 있었느냔 말이다.


그러다 내가 직장인 분들에게 강의하던 말이 떠올랐다.

"여러분, 상사나 나와 상충하는 유관부서 사람을 미워하지 마세요. 여러분을 지적하고, 내 업무에 도움을 주지 않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알고 보면 저마다의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거든요."


과연 그랬다.

나를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차들은, 그저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뿐이었다. 나를 방해할 의도나 목적 따윈 없었다. 내 앞의 차는 운전자의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고, 운전 실력이 조금 부족했을 뿐이며, 우연히도 내가 가는 길과 많은 동선이 겹친 것뿐이었다.


도로 위 각각의 차량은, 저마다의 길을 가고 있는 것뿐이었는데.

내 상황이, 내 조급함이. 내 주위 모든 차를 내 삶의 방해꾼으로 규정한 것이다. 가뜩이나 살기 힘든 세상인데, 나는 그렇게 스스로 수많은 적과 장애물을 양산하고 있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약속 장소로 향하는 내내 전투모드였고, 스스로 만든 지옥에 갇혔으며, 그날 하루를 밝지 않은 날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직장에서, 내가 강의하는 것과 같이 '저 사람은 저 사람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며 스스로를 다스려왔다.

그것은 과연 큰 위로가 되고, 순간의 화를 여러 번 참게 해주었다.


운전도 마찬가지.

내 앞에서 알짱알짱 대는 차가 있거나, 차선 변경을 하려는데 애매하게 계속해서 같은 속도로 달려 차선 변경을 하지 못하는 차를 만나게 되면 괜한 분노를 터뜨리기보단, '아, 저 차는 그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저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일 뿐.

어쩌면 나도 내 길을 가는 동안, 누군가의 앞길을 막거나 또는 의도치 않게 장애물이 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 분명 그러할 것이다. 내 길이 누군가에겐 그 사람을 가로질러가거나 심지어는 역주행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잠깐, 근데 내가 가야 할 그리고 가고 있는 길은 대체 어디인 건가?

문득, 내 삶의 내비게이션이 어디로 찍혀 있는지가 궁금하다.


그러니까 내가 신경 써야 하는 건, 부대끼는 주위 차가 아니라 바로 내 '갈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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