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참, 더럽게 글 안 써지는 날에
계속해서 쓸 팔자인가 보다.
글이 안 써진다.
소재와 제목은 끊임없이 나오는데, 내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꺼내려하는데, 어렵게 꺼내어 보면 내어 놓은 문장이 영 마음에 안 든다.
'글쓰기 삶쓰기다'라고 나는 말한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면, 아마도 삶에 무언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지금 나는 적당히 게으르고, 대단히 바지런하다. 고로, 삶은 써지지 않는 글의 원천은 아니다.
글쓰기에 관하여 스스로 말했던 것들을 떠올려 본다.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 그래, 무언가 나를 관통하지 않는 느낌이다. 왜 나는 지금 스스로를 관통하지 못하고 있을까?
이것은 대게 진실성이 떨어지거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지 못할 때 생겨난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존재는 무언가가 켕기게 되어 있고, 그 켕기는 마음은 일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흐리게 한다.
일상이 고만고만해 보인다.
적당히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이 참으로 익숙하다.
익숙함은 심리적 평안을 가져다주지만, 그 평안은 말 그대로의 평안이 아니다.
가만히 있는 곳에 일랑이는 바람은 이내 곧 태풍으로 출렁인다.
누군가 나에게 "글쓰기가 두려워서 쓰지를 못하겠어요."라고 도움을 구했다.
"그럼, 두려움에 대해 쓰세요."라고 말했다. 대답은 쉬웠다. 무언가 명쾌한 답 같았다. 대답을 들은 그분도 무언가 영감을 얻은 듯했다.
생각해 보니, 그땐 참 더럽게도 글이 잘 써질 때였다.
여기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래, 그렇다면 '글이 잘 써진다는 것'과 '글이 잘 안 써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한 자리에 앉아 잔치국수 면을 후루룩 먹는 것처럼 매끄럽게 써지는 게, 글이 잘 써지는 것일까? 아니면, 내어 놓는 문장 하나하나가 다 주옥같은 명언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건, 글이 잘 안 써져도 나는 글쓰기를 붙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꽤 칭찬해 줄 만하다. 무엇하나 꾸준히 한 것이 없고, 또 무엇하나 크게 이룬 것이 없는 나에게 글쓰기는 무언가 계속하여 내 삶에 산재한 점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까.
거 참 더럽게 글이 안 써지는 날에도.
나는 이토록 글을 쓰고 있다니.
그래, 나는.
계속해서 쓸 팔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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