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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07. 2023

컵라면에 대한 단상

일상을 달리 보려는 노력.

가족들과 이동 중인 차 안이었다.


첫째가 말했다.

"오늘 집에 가면 컵라면 끓여 먹을게요."


요즘 들어 나보다 키도 더 커지려 하고, 말도 더 잘하는 아이들에게 괜스레 시비를 걸고 싶었다.


"컵라면을 끓여 먹는다고?"
"네, 그럴 건데요. 왜요? 집에 컵라면 없어요?"
"아니, 컵라면은 어떻게 끓여 먹지? 냄비에 넣고 끓일 거야?"


첫째가 눈치를 채고 말했다.

"아니, 아빠. 왜 그러세요... 장난하시는 거죠?"


맞다.

괜스런 시비로 시작한 그것은 장난이었다. 그러나 이내 모두가 고심을 하게 되었다.


"근데, 그러고 보니까... 정말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 거지?"
"그러면, 컵라면 먹는다...라고 해야 할까요?"
"그것도 맞겠지... 그런데 그건 끓여 먹는 건지, 뜨거운 물을 넣어 먹는 건지... 아니면 생라면에 수프를 뿌려 우걱우걱 먹는 건지 구분이 안되잖아."
"그러네요. 그러면 컵라면을 만들어 먹는다?"
"그건 또... 내가 컵라면을 공장에서 제조해서 먹는 다란 말일 수도... 있고..."


차 안엔 정적이 흘렀다.

어처구니없는 질문과 대답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가족들은 모두 창 밖을 보며 그렇다면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넣어 먹는다'라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그런 말이 정말 별도로 있진 않았다.

'라면'이란 말 자체는 중국의 '납면'으로 유래되어 일본식 발음 '라멘'으로 변화되었다. 1963년 우리나라 한 식품회사가 일본에게 전수받은 노하우로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출시하였다. 이 끓여 먹는 라면에 편리성을 더한 것이 바로 '컵라면'일 텐데.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라면'이라는 특성에 대한 별도 표현이 없는 것으로 인해 우리 가족은 차 안에서 정적을 맞이한 것이다.


말장난 같고, 말 꼬투리를 잡는 것 같지만.

나는 이러한 원 뜻과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과 계속해서 나누려 한다.


알지 못했던 것, 그저 지나치려 했던 것에 대한 미련이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미련이 삶에 꽤 도움이 된다는 걸 나는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


일상을 달리 보려는 노력.

당연한 것을 특별하게 보려는 시도.


이것을 게을리하지 않을 때, 컵라면과 같은 혁신이 계속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나저나.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다'라는 말을 좀 더 간편하게 할 표현은 정녕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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