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관점을 바꾸어보는 것
번데기는 2차원의 세상을 산다.
그 껍데기를 벗고 나오면, 성충이 되는데 어느 것은 높이 뛰고 어느 것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공중을 향한다. 3차원의 세상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나는 그 성충이, 2차원에서 3차원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쾌재를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차원' 이동을 한 그 작은 존재에게 나는 경의를 표한다. 번데기라는 껍데기를 벗지 못했다면, 나름의 장고를 거치지 않았다면. 차원의 이동은 가능하지 않았을 이야기일 테니까.
문득, 몇 차원에 살고 있는지를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3차원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지만, 그 지식은 사회적 통념이며 그보다 낮거나 높은 차원에 살아본 기억이 없기 때문에 3차원에 대한 감흥은 그리 크지 않다. 저 차원에서 고차원으로 이동 한 성충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유다. 같은 차원에 있지만, 내가 하지 못한 걸 해낸 존재에게는 그러해야 한다. 배움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지면을 기어 다니다가 공중으로 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꽤 짜릿하지 않을까.
눈에 보이는 지평선이 다인 줄 알았는데, 날아오르니 보이는 광활한 풍경은 그 존재에게 어떤 의미일까.
대개 차원이동은 '포털'을 전제로한다.
문을 열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번데기의 껍질이 유충에게는 포털이다. 성충으로 변하고, 차원을 바꾸는 포털.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포털은 무엇일까.
산 아래 있을 때 나는 그것을 오르는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꾸역 꾸역이라도 올라 어느 높이에 이르면 생각이 달라진다. 왜 진작 이곳에 오지 않았을까.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바뀐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풍경이 달라지면 관점 또한 바뀐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풍경은 어쩌면 서로 다른 차원이 아닐까.
풍경을 달리 볼 줄 안다면, 차원을 이동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시선을 바꾸어 보는 것.
관점을 바꾸어 보는 것.
어쩌면 이것이 내가 그토록 하고 싶은 다른 차원으로 가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시선과 관점을 바꾸면 서는 곳이 달라지고.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바뀌고.
풍경이 바뀌면 생각과 느낌이 달라지고.
생각과 느낌이 달라지면 삶이 바뀌게 될 테니까.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지금 어떤 풍경을 마주하고 있는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풍경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건.
사라지지 않는 풍경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다른 관점으로 깨달아 저장된, 특별한 풍경에 대한 기억은 시간의 흐름을 위배한다.
시간을 위배하는 존재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다. 달라지는 풍경을 수집하는 이유다. 서는 곳을 달리 하려는 이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이 답답한 번데기 껍질을 벗어 내버릴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건, 다름 아닌 나에게 달렸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이번 달에는 순차적으로 앞선 작가님이 지정한 문장을 포함하여 글을 이어가는 글쓰기 릴레이를 진행 중입니다. 제가 받은 문장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풍경이다>입니다. 그리고 제가 다음 작가님께 드릴 문장은 <모든 건, 다름 아닌 나에게 달렸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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