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맛있게 먹은 라면은 언제였나요?

라면은 원래 맛있지만...!

by 스테르담

영화 식객엔 라면에 집착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우중거다. 우중거는 군대에서 맛있게 먹었던 라면의 맛을 그리워하며, 선임병이었던 호성이 끓여준 라면의 비법을 알아내기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집착'은 자신에겐 진지함이고, 다른 이에겐 가벼움이다.

우중거는 맛있는 라면의 비법을 알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 매 맞기도 하고, 호성의 밭을 대신 갈아주며 혼신의 힘을 다하는 진지함을 보여준다. 관객의 웃음은 이 진지함이 가벼움으로 극화될 때 나온다.


그렇다면 호성은 우중거에게 그 비결을 알려줬을까?

사실, 호성에게 라면을 맛있게, 특별하게 끓이는 비법은 없었다.


아마도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글 제목에서 힌트를 얻었을지 모른다.

결론은, 호성이 라면을 맛있게 끓인 게 아니라 우중거가 라면을 맛있게 먹은 것이다. '그 순간'이 그의 뇌리에 박혀 있는 것이다.


원래 라면은 맛있다.

칼칼한 국물과 뱃속 깊은 곳의 영혼을 위로하는 야들야들한 탄수화물의 조합은 왜 우리가 소울 푸드라 부르는지를 알게 해 준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라면이 특히나 더 기억에 남게 된다면 그것은 맛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게 맞다.


고로, '맛 이상의 것'은 '어느 순간'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추억'이다.


내게 남는 그 추억의 순간은 꽤 여럿이다.


우중거처럼 군대에서의 라면맛을 나는 잊지 못한다.

불침번 근무 후에 추운 겨울날 복도 끝에서 덜덜 떨며 먹었던 봉지 라면. 젓가락이 따로 없어 볼펜 두 자루로 애써 면을 집어 먹었던 그 맛은 지금도 머리 한 편에서 떠나질 않는다. 또 한 번은 잠복 훈련 기간 중, 모닥불을 켜고 반합에 끓여 먹었던 라면이다. 서럽고 추운 시절이었지만, 라면의 힘으로 버텨낸 그 시간들이 아스라하다.


그 외에도 라면의 추억은 많다.

한식을 먹지 못하던 장기 해외 출장. 가족과 함께 했던 유럽 일주 여행 등. 느끼한 음식은 가슴 언저리에서 내려가지 않다가, 라면의 국물이 닿으면 마법과 같이 속이 후련해지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 모든 추억은 하나의 '때'다. 그러하니 나는 가장 맛있게 먹은 라면이 '무엇'이냐고 묻는 게 아니라, '언제'냐고 묻는 것이다.


영화 식객의 마지막에 호성은 우중거에게 라면 하나를 택배로 보낸다.

그리고 '라면 맛있게 먹는 법'을 적어 엽서로 동봉한다.


마침내 우중거는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라면의 비법을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추억'이었고.

그 어느 한 '때'였다.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 도시를 사랑하는 법 (& 나의 Top 10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