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야지.
넛셸투어?
'Nutshell Tour'가 뭘까?
오슬로에서 뭉크를 만나고, 뮈르달과 플램으로 이어진 산악 열차를 탔을 때에도 가시지 않은 의문이었다. 크루즈를 타고 구드방겐 피요르드의 아름다움을 보았을 땐, 잠시 그 질문이 잊히기도 했다.
그제야 떠오른 'in a nutshell'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본래의 뜻은 견과의 과피를 말하지만, 그것을 싸고 있는 하나의 범론적인 개념으로 보면 그것은 '요약', '간단' 또는 '간결'이란 말이다. 오슬로에 도착하여 두 번의 기차를 타고 크루즈와 버스 그리고 다시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간 베르겐까지의 거리는 총 463km. 노르웨이를 방문하면 해봐야 하는 '요약된 패키지'였던 것이다.
'In a nutshell'이란 영어 표현도 생각났다.
금세 그것이 떠오르지 않은 이유는 자존심 강한 북유럽과 영어 표현이 어울리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슬로에 도착해 접한 간판이나 표지판의 모든 단어는 투박하고도 처음 들어본, 그래서 한 번에 잘 읽히지도 않아 어디 가서도 혹시 당신도 가봤냐고 쉬이 물어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하지 않았는가. '뮈르달', '구드방겐'... 영어표현이 쉽게 생각날 리가 없다.
산악 기차는 동화 속 설산으로 우릴 안내했고, 피요르드를 가로지르는 크루즈는 살을 에는 추위와는 달리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추억을 안겨주었다.
그러다 여행과는 영 어울리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여행의 묘미는 기대하지 못한 변주에 있다고 하지만, 고요하고 차분한 노르웨이에서 맞이한 그 사건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문제는 베르겐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크루즈에서 내려 버스로 향하던 때였다.
의도적인 패키지는 아니었지만 넛셸투어 티켓을 산 사람들은 같은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한데 모여있었다. 그 어떤 통제도 없었고, 줄을 세우는 표시 하나 없었다. 북유럽의 자율성을 감안한 조치라 생각하고 사람들 틈에서 버스를 다리고 있던 순간. 버스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동요했고, 버스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서유럽, 남유럽, 북유럽 그리고 아시안과 어느 다른 곳에서 왔을 모든 사람이 일제히 영화에서 보던 아포칼립스를 재현해내고 있었다. 각자가 들고 있던 캐리어와 배낭 등으로 버스 입구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가족 대부분의 짐을 갖고 있던 나는 뒤처졌다. 가족들은 버스에 탔지만 나는 여전히 버스에 짐을 싣고 있었고, 사람들은 내가 가족과 떨어져 있는지 아닌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문득, 영화 부산행이 생각났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나는 어떻게든 이 무리를 헤치고 가족이 있는 버스로 향해야 했다. 버스 안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들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버스 기사는 사람들의 무질서는 방치한 채, 사람이 차면 버스 문을 닫고 출발할 생각에만 가득한 듯 보였다.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버스 안이었고 가족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상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족이 안에 있다고 외친 내 말을 누군가 들었고, 아마도 그래서 길을 내어 주었던 것 같다. 설산과 피요르드로 정화된 마음이 모두 뒤집어진 경험이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무언가 쉽지 않은 감정이나 생각이 들 땐, 이 모든 건 '과정'이라 생각하면 된다. 특히 그것이 여행 중 일어난 일이라면, 좋았던 순간은 추억이 되고 그렇지 않은 모든 건 경험으로 승화될 수 있기 때문에.
Voss에 도착한 버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눈빛으로 노란색 헤드라이트를 켜고 정차해 있었다.
다시 기차를 타고 베르겐으로 향하는 길.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주고 싶었는지, 저 멀리 석양이 차창에 기댄 내 얼굴을 따갑지 않게 어루만져주었다. 가족들은 곤히 자고 있었다.
잠든 가족들을 보면, 가족들을 잘 지켜내야겠단 다짐이 나도 모르게 올라온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건 여행을 떠나 일상을 통틀어서도 느껴지는 막연한 책임감이다. 책임감의 다른 이름은 사랑일까.
베르겐행 기차인지, 부산행 기차인지.
헷갈렸던 하루.
아무렴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며, 다시 여행을 만끽해야겠다는 생각에 전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