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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28. 2017

피요르드보다 아름다웠던 꼭 잡은 두 손

노르웨이 오슬로부터 베르겐까지


- 여정 -


1. 암스테르담 To 노르웨이 오슬로 (2박)


2. 오슬로 To 베르겐 (넛셸투어/ 1박)

*넛셸투어

- 오슬로 (Oslo) To 뮈르달 (Myrdal)_ 기차

- 뮈르달 (Myrdal) To 플램 (Flam)_ 산악기차

- 플램 (Flam) To 구드방겐 피요르드 (Gudvangen Fjord)_ 크루즈

- 구두방겐 (Gudvangen) To 보스 (Voss)_ 버스

- 보스 (Voss) To 베르겐 (Bergen)_ 기차


3. 베르겐 To 암스테르담



플램에 도착한 우리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크루즈를 만났다.

배를 타기 전 남은 시간은 약 30여분. 기다리는 동안 이것저것 구경을 할 수 있는 기념품 가게가 있어 기다리는 시간을 달랠 수 있었다. 기념품 가게 입구부터 이어지는 트롤은 아무래도 정을 붙이기 쉽지 않았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트롤은, 다른 신들과의 전쟁에서 패해 은둔을 하며 사는 무능한 존재로 여겨지지만, 동물과 사람을 가리지 않고 잡아먹는 다고 하니 정이 안 가도 미안할 이유가 없다. 그래도 어느새 아이들은 트롤 양 옆에 서서 사진 찍을 준비를 한다.


추운 몸을 잠시 녹이기 위해 대합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밖을 나서니 어느새 배 근처에는 사람들의 줄이 길다. 줄 선 모습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이미 늦은 거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배에 들어가 보니 자리는 충분히 남아 있었다. 줄 서기를 뒤로 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날씨는 춥지만, 그 느낌이 청량하여 '시원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바람을 맞으며 물가에 다가간다. 모든 게 차디 찼지만, 기분은 좋았다.

이미 배 아래 줄이 길게 서있다.
세련된 모습의 배는 3층 갑판으로 이루어져 피요르드를 사방으로 감상할 수 있다.
줄 서기를 뒤로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승선하여 1층부터 3층까지 빠르게 둘러본다. 아이들도 신이 났다. 구름이 맞닿은 요 앞의 산봉우리들이 피요르드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는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배는 수많은 사람들을 옮기기 위해 영향 보충을 하고,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자리를 잡느라 분주했다. 출발도 안 했지만 사람들의 카메라는 쉴 틈이 없었다.

3층 갑판에서 바라본 정면


1층 실내에 자리 잡은 우리는 몸을 녹였다. 피요르드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배가 속도를 낸 것도 아니지만 날씨는 제 역할을 다해 추위를 뿜어댔다. 다행히 자리 잡은 한 편에 공간이 있어 아이들은 이리저리 뒹구르며 여유를 만끽했다. 저렇게 어디서든 뒹구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웠다. 옷이 더러워지거나 바닥이 더러울지 모른다는 걱정은 잠시 접기로 했다.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바닥보다는 그나마 나았던 창가에서.
1층 선실.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있다.

뜨거운 것이 생각날 때쯤, 우리는 노르웨이에서 잘 나간다는 라면을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배에서도 판매를 했는데, 반가운 한글로 무슨 맛인지 용기에 쓰여있었다. 그것은 '소고기맛'. 맵지 않아 아이들도 부담 없이 즐겼다. 무엇보다 차가워진 몸을 녹이는데 더없이 좋았다. 역시, 라면 만든 사람은 노벨상 줘야 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라면은 이렇게, 따뜻함을 채워준다. 굶주린 사람들의 든든한 친구이자 허기를 넘어 영혼까지 어루만지는 느낌이다.


마침내 배가 출발한다. 따뜻함으로 배를 채운 아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간다. 바람이 세서 문이 잘 안 열릴 정도. 기어코 밖으로 향한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피요르드를 둘러보고 있었다. 5분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1층부터 3층까지 모두 둘러봤다. 바람이 차지만 청량했고, 청량했지만 살을 에웠다. 배 앞에 섰을 땐 불어오는 바람으로 머리가 얼얼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그러한 고통은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풍경, 살을 에는 바람,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는 배,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즐거운 아이들. 이 모든 것을 조합하면 '추억'이 만들어진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무언가가 가슴 깊이 아로새겨지면서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그 순간.

해발이 높아 구름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지나가는 모든 풍경이 아름답다. 이 순간을 아름답게 가슴에 추억으로 남게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배에 불어오는 맞바람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린걸까, 젊은걸까.


여기저기 사진을 찍다 다시 아이들을 보니 두 녀석들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첫째 녀석은 괜찮은데, 둘째 녀석이 춥다고 하니 서로 잡은 손이다. 뒤에서 바라보던 내 입가엔 미소가 지어졌고 마음은 뭉클했다. 녀석들이 이 순간을 기억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은 분명 내가 받은 선물이었다. 녀석들이 내게 준 소중한 그것. 녀석들로 인해 힘들었던 그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날려 버리고, 다시금 좋은 아빠가 그리고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도록 만드는 거룩한 순간.


아이들이 이 사진과 내 글을 보고, 마침내 떠올려 그 마음에 깨닫는 것이 있을 것임을 나는 안다. 얼마나 걸릴지, 그 크기가 어떨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우리가 거기 있었고, 지금 가족으로서 함께 인생을 여행하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족여행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리고 계속된다.

꼭 잡은 두 손. 고마운 선물.


P.S

시원한 피요르드 크루즈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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