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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29. 2017

네덜란드 Gouda(하우다) 데이트

'하우다'에서 만난 '고다' 치즈

백만 년 만이다.


그때는 웃겼지만, 찍어놓길 잘했단 생각이든다.

평일 나의 일상은 회사와 집. 와이프는 아이들 뒷바라지. 주말이면 우리 둘과 아이들은 온 가족의 시간을 보낸다. 띄엄띄엄 각자의 시간을 갖곤 하지만, 어쩐지 와이프와 나의 둘 만의 시간을 만들어내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굳이 아이들을 떼어 놓고 시간을 갖는 것도,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서인지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아마 마지막으로 둘이 손 잡고 연인처럼 걸었던 건, 약 일 이년 전쯤인가 파리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였던 것 같다. 마침 함께 여행을 하신 장모님께 아이들을 맡기고 둘이 에펠탑 근처를 거닐었던 그때. 그 순간을 기념해야 한다며 손을 맞잡고 에펠탑을 배경으로 찍은 '연출된 두 손'의 사진은 한 때 오랫동안 나의 휴대폰 배경 화면이었다. 그러다 백만 년 만에, 와이프와 데이트할 시간이 왔다.









헤이그에서의 투표와 '하우다' 데이트


토요일이면 아이들은 '한글학교'로 향한다. 아침 9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다. 보통이면 나는 밀린 일을 하기 위해 회사로 향하고 와이프는 장을 보거나 집안일을 하다 아이들을 데리러 간다. 그런데 오늘은 변수가 좀 생겼다. 바로, 투표를 했어야 했던 것. 어느덧 부모로서의 일상에 한 걸음 더 가까운 우리는, 잠시 걸음을 뒤로하여 남녀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이들 없는 나들이는 허전했지만, 헤이그까지의 길은 연애시절의 '드라이브'가 되었다. 투표를 마치고도 우리는 다음엔 무얼 할까 설렌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네덜란드에 대한 책을 쓰는데 치즈에 대한 이야기를 추가해야 하는 김에, '하우다'로 방향을 정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사진을 좀 찍고 햇살 아래서 브런치를 나눌 요량이었다. 헤이그에서는 약 35분 거리. 다시 한번의 드라이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간직한 '하우다'


날씨는 눈부셨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와이프의 손을 잡았다. 맞잡은 두 손이 어색하지 않다. 눈부신 날씨와 두 손은 그렇게 잘 어울렸다. 물론, 내가 여기저기 사진을 찍느라 손은 자주 놓였지만 와이프는 고맙게도 모든 걸 이해해준다. 물가에 모습을 드러낸 앙증맞은 물고기 꼬리와 알록달록한 횡단보도가 우리를 맞이한다. 별것 아니지만 인상적인, 네덜란드 각 도시의 매력이다. 

앙증맞은 지느러미들
마스트리흐트 무지개 횡단보도를 떠올리게 하는 알록달록함


Markt로 향하는 골목 어귀어귀에 꽃내음 가득한 화분들이 다리 난간에 걸려있다. 꽃은 항상 네덜란드의 각 건물들과 잘 어울린다. 오늘은 날씨와 분위기, 사람들의 분주함과도 앙상블을 이뤘다. 그리고 마침내 길을 가다 '하우다'치즈 상점을 만났다. (참고 글: 'Gouda(고다)'치즈를 왜 '하우다'치즈라 부를까?)

참고 글에서 볼 수 있는 지식을 써먹을 차례. 노란색과 붉은색, 하얀색과 검은색 등을 가진 수많은 치즈와의 조우가 반갑다. 시식도 함께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그동안 궁금해했던 치즈들의 맛에 서슴없이 도전한다. 말랑말랑한 숙성의 것부터, 푸석푸석 입안에서 으스러지는 장기 숙성의 검은색 왁스 안 치즈까지. 

24개월 숙성한 검은색 왁스의 '하우다 블랙'


네덜란드 치즈 생산의 60%를 차지하는 저력은 이들이 얼마나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럼에도 어디에도 휘황찬란함은 찾기 힘들다. 그저 오래된 것들을 잘 보존하여 전통을 현재의 보물로 승화한다. 각 건물들에 새겨진 설립 연도가 대부분 1600년도 인 것은, 그들의 황금기를 대변한다. 지금보다 더 큰 부(富)를 쌓았을 그때 세워진 건물이 한둘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하우다'는 '네덜란드의 심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니 그 옛날부터 이곳이 얼마나 융성하고 다이내믹하였던 곳인지를 말해준다.

마크트 광장은 그야말로 활기찼다.


다시 부모로


교회와 시청, 그리고 치즈 측량소가 있는 광장은 활기찼다. 와이프와 이곳에 앉아 여유로운 브런치를 즐기고 싶었지만 시계를 보니 어느새 가야 할 시간이 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푸른 하늘과 신선함이 가득한 시장, 그리고 사람들의 북적임이 내내 좋았다. 그게 그렇게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도 남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을 다 키우고 우리는 이렇게 나중에 둘이 유럽 여행을 다녔으면 좋겠다는 말에 와이프는 입가에 엷은 미소만을 지었다. 좋아서인지, 현실적이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 그런 건지. 또는 당장 와이프의 머릿속에는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가득 들어차 아직은 그 생각을 해보지 않았거나. 그러고 보니 우리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남녀라는 존재에서 부모라는 역할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도 그렇게 좋았다. 

시청사 건물
측량소에서 바라본 시청사 뒷편
차즈 측량소 (Waag)
누가봐도 치즈 측량소임을 알 수 있다.
측량소의 뒷편은 자전거 주차장으로.
시청사 건물과 하늘이 잘 어울린다.
시장의 활기참과 하늘. 그리고 시청사, 측량소.
건물 사이로 보이는 하우다 교회
가지런한듯 하면서 저마다의 개성을 간직한 하우다의 집과 상점
네덜란드의 황금기. 1600년대에 지어진 건물. 지금은 하우다 박물관이다.
하우다의 시작.
하우다와 세상을 잇는 입구이자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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