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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30. 2017

집은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 그리고 가족이 있는 곳이 바로 집.

어렸을 때 꿈은 땅 위의 집에서 사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난 뒤. 우리 집은 항상 방 한 칸에 지나지 않는 크기였고, 그마저도 '반지하'나 '지하'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습하고 추웠다. 벽지에 핀 곰팡이는 그저 자연스러운 문양과도 같았다. 어떤 날은 방 옆에 있는 하수구에서 빗물이 역류하여 온 방안에 검은색 물이 들이찬 적도 있다.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마지막 집의 기억엔,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었다. 물론 지하도 아니었고 물이 역류하지도 않았으며, 춥거나 습해서 곰팡이와 함께하지도 않았었다. 나는 다섯 살 이후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그렇게 지상(地上)이 아닌 집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어쩌면 땅 위의 집에 사는 것을 앙망하는 것이 그리 과한 욕심이거나 괜한 투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집은 '가장(家長)'이다.


그러니 난, 집을 '가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버지의 별세로 가세는 기울고, 곧바로 주저앉은 '집'의 모양새가 그것을 대변한다. 기울어지는 가세는 땅을 뚫고 지하에까지 이르러, 어린 소년의 마음속에 지하방의 탈출을 꿈꾸게 한 것이다. '가장'은 집안의 '경제'를 책임진다. 우리나라에서 '집'은 주거공간의 의미보다는 '부(富)'의 수단으로 변모한 지 오래다. '경제'적인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 '집'이니, '가장'의 경제력의 고락(苦樂)을 함께 하는 것이 '집'. 그러니까 집은 '가장'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이미 우리 아버지께서 그것을 증명하지 않았나.


집은 가족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다.


다시, 집은 '경제적'인 것과 심하게 맞물려 있어, 집값은 사람들의 인생 패턴까지 바꿔 놓고 있다. 즉, 집 값이 한없이 올라, 결혼을 미루고 꿈을 미룬다. '집'이 마련되어야 가족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나 또한 아버지의 별세로 '가족을 이루는 것'에 대한 갈망이 누구보다 컸다. 정말 화목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또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가장 큰 선결 과제는 '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집'은 어느새 우리에게 가장 난해한 '문제'가 되어 있었다. '가족'이 사는 곳이 '집'이 아니라, '집'이 있어야 '가족'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운이 따라준 덕에 나는 결혼 전에 집 장만을 할 수가 있었다. 마침내 가족을 만들기 위한 '수단'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니 '가족'은 금세 이루어졌다.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도 바로 만나볼 수가 있었다. 어찌, '집' 하나로 이 모든 게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는 있겠냐마는, '집'이 없었다면 어떠한 변수가 생겼을지 모르는 일이다. 사랑을 통한 결혼은 행해졌겠지만, 첫째와 둘째를 만나는 시기가 늦추어졌다던가 하는. 예를 들자면...

예전 어른들은 월세 단칸방에서도 잘 시작했다는 말. 나는 이해한다. 나도 어려움이 있었고, 또 그런 어르신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다르다. '성장의 시대'와 '정체의 시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역성장'이라는 말까지 쓰는 요즘은 각각 다른 사정이 있는 것이다.


결국, 집은 가족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었다. 그것이 내게 가족이다. 내가 못 다 받은 사랑을, 화목한 가정을 아이들에게 주기 위해 난 매일 아침 녀석들과 포옹을 하며 '사랑해'를 귀에 속삭인다. 녀석들의 기억에 그것이 콕 박혀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어릴 적을 떠올려 '가족'에 대해 생각할 때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은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그래서 '가족'이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 '집'이란 걸 깨달을 수 있도록.




지금은 회사의 명을 받아 해외에서 주재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 회사에서 마련해 준 집은 3층 집이다. 네덜란드이기 때문에, 말이 3층 집이지 좁고 높은 소박한 공간이다. 다행히 뒤편엔 작은 마당도 있다. 봄이면 그리 화려하지 않은 튤립 몇 개가 올라오는.


한국에서 지내던 아파트. 네덜란드에서 지내는 작은 마당이 있는 소박한 3층 집. 그리고 앞으로 '가장'으로서 나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에 기반하여 바뀌게 될 집까지. 난, 아이들이 '집'을 그저 형태나 규모로 기억하길 바라지 않는다. 아침이면 일어나 서로를 안아 느끼던 체온, 그리고 귓가에 속삭이는 사랑의 언어를 함께 기억했으면 한다. 그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왕궁'을 물려주지 못하고, 흔쾌히 아파트 하나씩을 사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일지라도, '집'은 수단이며 결국 '목적'은 '가족'이라는 것에 있음을. 그렇게 깨닫고 스스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은 수단으로써 받아들이고 착실히 준비하는 아이들이 되길 바란다. 나는 결핍으로 '목적'을 갈구했지만, 녀석들은 사랑의 기운으로 또 다른 가족의 구성을 앙망하길 바란다.


다시, 가족이 있는 곳이 바로 집이라는 것을 평생 잊지 않으며 말이다.



덧붙임


그래도 생각해보면 그 춥고 습기 찼던 지하방이나, 화장실이 집에 없어 공동으로 사용하던 불편했던 집이 그립기까지는 하지 않아도 고마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그 어려웠던 우리 가족을 받아줄 데가 있었을까. 지하라서, 화장실이 저 멀리 있는 공용이라서. 그 집들은 제 살을 깎아 우리 가족이 지낼 수 있는 장소를 준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그래서 또 다른 가족이 탄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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